가을볕에 서서 기도를 한다

수시 원서 접수를 마치고 3

by sallala

이석증이 찾아왔다.

하루는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지만, 어지러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몸은 피로하고, 소화도 어렵고, 등까지 뻐근하게 아파왔다.

작년 한해 학교에서 교과교실제 구축 사업을 도맡아 진행하며, 방학동안 하루도 맘 편히 쉬지 못했다.

올해의 업무는 작년보다 수월했지만, 마침 아이가 고3이었다.

어찌어찌 9월까지 버텨왔건만, 아이의 수시 원서를 접수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펑하고 퓨즈가 나가버렸다.


고려대 원서접수를 생각하면,

어이없는 자책골로 경기를 망쳐버린 국가대표 선수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리와 가슴 속을 가득 메워왔다.

'아이고~ 무슨 배짱으로 이런 대학들을 지원한거야?'

아이의 성적이, 아이의 생기부가 날이 갈수록 형편없이 느껴졌다.


마음을 다스리는 여러 동영상들을 찾아 보았다.

학교 도서관에서 신간을 여럿 빌려 소파에 기대 앉아 책을 읽었다.


두렵다.

입시의 결과를 받아들일수 있을지.

입시의 결과를 받아들고 힘들어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지.


아이의 입시를 두고 엄마가 너무 오두방정이다라고 생각할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게 현실이다.

아이의 입시가 아이의 적성과 능력만을 고려한 아이만의 문제가 아닌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입시제도의 문제이다. 지난 3년 중간수행기말수행을 5번이나 반복하며, 간간히 수능을 준비하며 쉴틈없이 달려왔다.

잘했든 못했든, 만족하든 그렇지 못하든 쉴틈없이 달리는 아이 곁에서 나도 같이 헉헉거리며 따라 뛰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퇴근 이후 아이에게 저녁을 해먹이고 이어지는 학원 라이딩만으로도 나는 하루하루 피로감에 잠식되어 갔다.


이석증 때문인지 원서접수를 하고 출력해놓은 각 대학의 수험표를 보면 속이 울렁거린다.

이제 저 대학들은 아이의 성적과 생기부를 낱낱이 해부하고 까발릴것이다.

나름대로 괜찮다고 자부하고 기대하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였음을, 오히려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지는 함량 미달이었음을 인정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왕룽'같은 대학들은 깎쟁이처럼 약삭빠르고 영리한 생기부에 눈이 멀어 둔탁하고 촌스러운 아이의 생기부 따위에는 시선 따위 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한결 부드러워진 가을 볕 한가운데 서서

이석증으로 휘청거리는 짧은 몸을 가다듬고

조용히 기도를 한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게 해주세요가 아닌


입시의 결과가 어떻든,

내가 후회없이 미움없이 자만심없이 애통함 없이 그 걸과를 받아들일수 있게 되기를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우리 고3 아이들

공부는 하지 않지만 선하고 순박한 우리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앞날이 작고 소소한 기쁨들로 충만할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우리 집의 말없는 아들

너무 크게 좌절하지 말기를

좌절하더라도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날수 있게 되기를

무엇보다 엄마와 아빠가 언제나 너와 함께 원팀이라는 사실에 안도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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