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인과 결혼한 사촌 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프랑스로 날아가다.
영국에 유학 갔던 사촌 동생이 몇 년 전 한국에 프랑스 여인과 함께 방문하여 가족들을 앉혀놓고, 그 여인과 곧 결혼할 것이라고 하였다.
외가 쪽으로 세 집이 있는데, 큰 외삼촌네는 사촌 언니들이 두 명이라 딸 둘, 둘째인 우리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이라 또 딸 둘, 마지막으로 작은 외삼촌네는 첫째는 딸이었지만, 아들로 태어난 막내 우리 사촌 동생 때문에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사촌 동생 상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온갖 총애를 받고 애지중지 자란 왕자님이었다. 가끔은 그 사랑이 좀 지나치기도 하였는데, 너무 편애가 심해서 여자로 태어난 우리들은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사촌 동생이 얄밉기도 할 만한데, 이상하게도 온갖 비정상적인 총애를 받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못되거나 심술궂은 성격과는 거리가 먼, 너무나 밝고 무슨 이야기를 해도 꺄르르르 웃어주는 착한 동생이라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었다.
5명의 누나들에 껴서 자란 귀한 막내 상현이가 결혼한다니! 그것도 프랑스 여인과!
그 당시에 나는 남편과 혼인신고를 한 상태라, 두 번째로 들어오는 가족이 또 외국인이라는 사실에 가족들 모두 놀라워했고 재밌어했다. 미국인 손주 사위에 이어, 프랑스인 손주 며느리를 맞이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주 며느리가 될 산드린을 만나셨을 때 내내 "헛헛헛" 웃으셨지만, 안타깝게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하실 수는 없었다. 애지중지 키운 3대 독자 손주가 프랑스인 아내를 맞이할지 상상도 못 하셨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억눌려 있던 섭섭함에 미묘한 감정이 더해져 약간은 통쾌함을 느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사실 뭐 보수적인 관점에서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사실 나는 사촌 동생이 프랑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우면 흥미로웠기 전혀 싫지 않았다. 나의 남편이 우리 가족에 들어와 느끼는 문화적 괴리감들을 남편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새롭게 가족에 합류한 프랑스 시누이와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다문화가 되어가는 것도 좋았다. 큰 외삼촌네는 호주로 이민 갔다 와서 호주 국적자들이고, 나와 동생은 일본에 오래 살다 왔고, 남편은 미국 국적의 해외입양인에, 상현이는 이제 프랑스 아내를 맞이하여 미얀마에 산다고 하니(현재는 또 거처를 옮겨 스위스에 가 있다) 이렇게 가족을 통해 다양한 문화들이 섞여 가며 또 변화하는 게 흥미로웠다.
정말 글로벌 다문화 시대의 최전선을 걷고 있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디까지 받아들이 실 수 있을까?
아무튼 우리는 사촌 동생의 이 성대한 프랑스 결혼식을 참석하기 위해 계획 짜기에 돌입하였다.
장거리 비행이 어려우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안타깝게도 가실 수가 없었기에, 사촌 동생네는 결혼식을 프랑스에서 한번 한국에서 한번 하기로 하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국 마지막으로 프랑스 결혼식에 참석하게 된 멤버는, 작은 삼촌네와 엄마, 내 동생, 나 그리고 우리 남편 이렇게가 되었다.
결혼 당사자들과 직계 혼주들은 결혼식 전후로 바쁠 테니, 일단은 우리끼리 계획을 따로 짜고 현지에서 만나는 것으로 하였다. 우리는 결혼식 전 일정으로, 결혼식이 열릴 지역인 노르망디 일대를 함께 여행하고 결혼식 후에 파리로 돌아와 3일 정도 묵은 후 귀국하는 계획을 짜 두었다. 계획을 짤 당시만 해도 아직 결혼식에 관한 정보는 많이 얻지 못했으나, 결혼식이 성대하게 유서 깊은 샤토(성)에서 열릴 거라는 것, 리허설 디너를 비롯해 결혼식 당일, 결혼식 다음 날 까지는 일정이 있다는 것만 대략 미리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드레스 코드가 "레드"라는 것도 기억해야 했다.
드디어 기대했던 "프랑스 샤토 결혼식 참석"을 위한 프랑스 노르망디로의 출국 날이 돌아왔고, 우리는 "레드" 드레스와 액세서리 등이 담긴 슈트케이스를 들고 신나게 인천공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