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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드부아 Oct 05. 2021

Mr. Bojangles

아빠의 노래   

서늘한 가을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어둑어둑한 저녁, 남편과 차로 외출 다녀오는 길이었다. 남편의 음악 플레이리스트에서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컨트리 풍의 올드팝이 흘러나왔다.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계속 반복되는 멜로디. 꾸밈없이 툭툭 가사를 던지는 보컬의 음색은 화려하진 않지만 매력적이다. 가사를 완벽히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노래를 느낄 수 있다. 아, 누군가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구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지만 난 멜로디를 타고 무언가가 그리워졌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를 보고 *어느 평론가가 이런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지나온 적 없는 어제의 세계들에 대한 근원적 노스탤지어.' 그러고보면 분명 내게 존재하지 않는 과거인데, 그리움이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비틀즈를 포함해 60~70년대의 올드팝들이 그렇고, 내가 태어나기 전의 엄마 아빠의 오래된 사진들을 봐도 그렇다. 그것들은 가짜 향수지만 착각을 일으켜 그 향수를 공감하게 한다.


남편이 가만히 노래를 듣다가 이야기했다.

"아, 아빠 생각난다. 우리 아빠가 좋아했던 노래거든."


이 노래는 나에게는 지나온 적 없는 어제의 세계지만, 남편에겐 지나온 어제의 세계의 음악이다. 아름다운 썬룸이 있는 포틀랜드의 집에서 아빠가 매일 듣고 흥얼거리던 노래. Mr. Bojangles는 아빠의 서재에서 언제나 흘러나오던 음악이었다. 차고의 물건들을 정리할 때도 아빠는 Mr. Bojangles를 어김없이 틀었다. 그런 남편이 어느 날 아빠의 서재에서 들어가 씨디 한 장을 찾았다. 90년대 초에 발매된 Mr. Bojangles의 새로운 마스터링 버전이 수록되어 있던 'Nitty Gritty Dirt Band'의 앨범이었다. 남편은 그 앨범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 그리고 그걸 집어든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 시절 아직 어린 아이였던 남편은 파란 눈의 아빠가 서재에 틀어박혀 뭘 그렇게 집중하고 있는지, 차고에서 도대체 무얼 그리 열심히 정리하고 있는 중인지 늘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러다 아빠의 취향을 우연히 알아버렸고 그 노래는 지금도 아빠를 기억하게 한다.  



"This is my whiteness!"
(이게(노래가) 바로 나의 백인스러움이야!)


그러더니 한국말로 한마디 더 덧붙였다.

"내 밖의 모습은 한국사람이지만, 안은 미스터 보쟁글스야."



(왼) Mr. Bojangles가 수록되어 있는 Nitty Gritty Dirt Band의 Greatest Hits. 남편이 아빠의 서재에서 찾은 앨범 (오) 남편의 어머니가 매해 크리스마스때마다 틀어주시는  The Roger Whittaker의 Christmas Album



남편은 보통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서 왔다고 이야기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포틀랜드의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조금 내려온 'Lake Oswego'라는 한적한 교외에서 자랐다. 동네 사람들 거의다 누가 누구네 애인지 대충 알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동양인이라곤 자신과 여동생을 포함하여 손꼽을 정도로 거의 없었다. 부모님도, 누나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이웃들도, 매일보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얬다.


"앗! 그러고보니 내가 동양인이였구나라고 대학가서 알았다니까."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이야기를 했지만 어느 정도 진담이었다. 남편이 대구에서 태어났을 때 가장 먼저 본 얼굴은 한국인 친부모님의 얼굴이였겠지만, 미국으로 입양을 온 후로는 자신이 알고 지냈던 모든 한국 사람들의 얼굴을 점점 잊어갔다. 한국말도 잊었고, 보모가 불러주던 좋아했던 노래도 어느 순간 완전히 잊어 버렸다. 그러고는 오랜 시간이 흐르고 대학에 가서야 한참을 잊고 지내던 한국 사람들의 얼굴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의 언어가, 그들의 노래가 다시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남편의 뿌리는  갈래 이다. 남편을 꿋꿋하게 가운데서 지탱하고 있는 뿌리가 미국이라면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얇은  뿌리가 한국이다.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어떤 피를 이었는지 보다 중요한  오랜시간 들어온 음악들과, 지켜왔던 가족의 전통들과, 즐겨왔던 스포츠와, 자라온 환경속에서 몸에 베어버린 행동방식과 가치관들이다. 남편이 말한대로 그의 속은 미스터 보쟁글스 임에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가짜 향수든 진짜 향수든 눈물샘과 감정을 자극할 수는 있지만 그 둘의 깊이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내가 'Mr. Bojangles'를 들으면 어느 정도 무언가를 함께 그리워할 수 있지만 정확히 무언지는 모른다. 하지만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가 들려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내게 지나온 어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친정 아빠가 이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빠는 집에 있었던 거추장스럽게 큰 오디오로 늘 노래를 들었고 노래방에 가서 이 노래를 불렀다. 아빠 차를 타도 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느 날 우연히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이미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죽음이란 개념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어린 나로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내 사랑 내 곁에'는 아빠와의 연결고리인데 그것이 '죽음'과 연결되는 게 무서웠다.


지금도 '내 사랑 내 곁에'의 반주 소절만 들어도 이내 아빠 생각에 눈물이 찔끔 나온다. 아빠는 그 노래를 지금 딱 내 나이대에 들었을 텐데, 지금은 흰머리가 희끗해지고 칠십을 바라보고 있다. 세월은 그리움을 추억할 시간도 충분히 내주지 않은 채로 너무 빨리 흘러버린다.


90년대 초 남편은 미국 포틀랜드에서 ‘Mr. Bojangles’를 나는 서울에서 ‘내 사랑 내 곁에’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래들은 그 시절의 젊었던 우리 아버지들에 대한 애틋한 향수가 되어버렸다.        



* 평론가 이동진.

* 미스터 보쟁글스 : 'Mr. Bojangles' 원곡은 1968년에 Jerry Jeff Walker에 의해 처음 발표 되었다. 훗날 발표된 Nitty Gritty Dirt Band 나 Robbie Williams 의 버전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 백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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