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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드부아 Oct 21. 2021

그날, 포틀랜드

아이는 새 가족을 만났다. 

그날은 매우 특별한 날이었다. 메리는 아침부터 매우 신이 나있었다. 메리의 첫째딸 자넷도 한국에서 오는 동생을 맞이 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일어났다. 메리와 메리의 남편 조의 이웃과 친구들이 이 기쁜 날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 함께 공항에 나가고 싶어 했지만 너무 북적거려 아이가 놀라진 않을까 하는 염려에 조는 모두 다 데려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가족들은 설레는 마음을 끌어안고 포틀랜드 공항에서 아이를 맞이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공항에 도착해 출국 게이트로 바로 향했다. 메리와 조는 아이를 곧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1987년 2월 10일, 오전 11시 20분. 아이가 탔을 유나이티드 항공 148편이 예정대로 포틀랜드 공항에 착륙했다. 홀트의 에스코트들에게 아이들이 한 명씩 안겨 게이트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메리와 조는 목을 빼고 아이를 찾았다. 저기 멀리 빨간색 상의를 입은 여성의 품에 안겨 나오는 아이를 발견했다. 두꺼운 청색 점퍼를 입은 아이는 에스코트의 팔에 꼭 안겨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메리가 아이를 향해 달려갔다. "안녕!" 이라 인사하곤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를 꼭 품 안에 안았다. 메리는 감정이 벅차올라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다. 조와 자넷도 곧 따라가 아이를 둘러쌓곤 서로를 꼭 부둥켜안았다. 새 가족으로써의 첫 포옹이었다. 아이에겐 아무 짐이 없었다. 입고 온 옷과 신발이 전부였다. 애착하는 장난감 하나 챙기지 못하고 낯선 곳으로 떠나온 이 어린아이가 긴 비행시간 내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메리와 조는 아이가 안쓰러워져 또 다시 눈물을 훔쳤다. 


공항엔 메리와 조의 친구들도 몇몇 나와 있었다. 아이는 말없이 생전 처음 보는 자신과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번갈아 쳐다 보았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아이의 똘망한 눈은 바쁘게 움직였다. 창밖으로 지나는 차들로부터 아이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 조는 제일 먼저 뒷마당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축구공을 주고받으며 아이와 잠시 시간을 보냈다. 메리는 공놀이가 끝나고 거실에 돌아온 아이의 옷을 미리 준비한 옷으로 갈아 입혔다. 아이가 포틀랜드 날씨와 맞지 않는 두꺼운 울 스웨터와 무거운 청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옷을 갈아입히고 점심을 먹기 위해 모두 식탁에 앉았다. 아이가 가족이 되어 함께한 첫 점심식사의 메뉴는 샌드위치와 김치였다. 아이를 맞이하기 며칠 전 메리는 *비버튼의 한국 마트에 가서 김치를 포함한 각가지 한국 음식과 재료들을 사다 두었다. 아이가 김치를 좋아한다고 입양기관이 건네준 서류에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자넷이 동생을 데리고 썬룸에 가서 몇 가지 놀이를 하곤 집을 구경시켜주었다. 넓은 뒷마당엔 나무들이 빼곡했다. "이 넓은 뒷마당이 모두 우리 거란다." 자넷이 말했다. 따스한 햇빛이 비추는 썬룸을 지나니 방금 점심을 먹었던 다이닝 룸과 부엌이 있었고, 그 앞으로는 거실이 이어져있었다. 거실을 지난 왼쪽으로는 화장실이 있었고, 오른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방문 하나가 보였다. 메리가 다가오더니 방문을 활짝 열며 아이에게 말했다. "조나단, 여기가 네 방이야." 방안에는 침대와, 옷장이 보였다. 아이의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피어났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메리는 아이의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메리는 지난 몇 년간의 노력이 헛대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메리와 조가 입양을 결정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메리와 조는 첫째 딸 자넷이 태어난 후 몇 년간 둘째를 가지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메리는 안타깝게 두 번째 아이를 유산해야만 했다. 매주 일요일이면 교회를 나가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던 메리와 조는 더 이상 슬퍼하는 대신 마치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인가 싶어 두 번째 아이를 갖는 대신 입양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저곳 입양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던 중 같은 오레곤 주에 있는 홀트란 국제입양을 주선하는 곳을 알아내게 되었다. 홀트 부부가 한국전쟁고아 8명을 입양하였다는 이야기에 메리와 조는 강한 끌림을 느꼈다. 조의 아버지가 한국전쟁의 참전하기도 해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왠지 친숙하기도 했고, 조는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하는 것에 대해 메리에게 제안했다. 메리는 주저 없이 동의했다.


그 해, 메리와 조는 곧 워싱턴주의 밴쿠버에서 열린 홀트 입양 관련 설명회에 참석하였다. 그들은 복지회 직원이 자택 방문에 동의하는 서류에 사인을 했다. 그것은 복잡한 입양 절차의 첫 단계일 뿐이었다. 이후, 그들은 수많은 인터뷰와 심사들을 거쳤다. 가족의 가치관은 어떠한지, 그것들을 어떻게 실천해 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실천해 갈 것인지의 복지회 직원과 몇 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많은 서류 작업들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친척들과 친구들의 추천서를 받아 제출했다. 


그리고 얼마 후 꿈에 그리던 소식을 받았다. 복지회 직원이 입양 후보인 한 아이에 대한 서류 꾸러미를 들고 집을 방문했다.  메리와 조는 그가 읊어주는 아이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귀담아 들으려고 귀를 쫑긋 열고 집중했다. 서류 꾸러미 속에서 아이의 사진이 나왔다. 낯설어서 인지 살짝 겁에 질린듯한 표정의 아이. 아이는 동그랗게 뜬 까만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앞지퍼가 활짝 열린 채로 의자의 팔받침을 꼭 움켜잡곤 겁먹은 사슴처럼 앉아 있었다. 새로운 가족에게 입양을 기다린다며 그래도 멋쩍게 포즈를 취했을 텐데, 앞지퍼 잠그는 것을 잊어버린 이 안타깝고도 사랑스러운 아이의 사진을 보고 일체의 주저함 없이 메리와 조는 외쳤다. 


" 네!! 이 아이를 입양하고 싶습니다.!!!"




조는 지금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이를 처음 만난 날 아이가 입고 있던 옷가지들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아이가 집에 메리와 조의 포틀랜드 집에 도착한 날은 모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기쁨도 눈물도 가득한 길고 긴 하루였다. 그 누구보다 아이에게 가장 길고 긴 여행이었으리라. 아이는 자기 방에서 금방 잠에 곯아떨어졌다. 아이는 무슨 꿈을 꾸고 있었을까. 행복한 꿈이 었을까. 그날, 포틀랜드에서 아이는 새 가족을 만났다. 



*비버튼 (Beaverton) : 포틀랜드의 남서쪽에 위치한 소도시. 

*홀트 아동복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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