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기숙사의 추억
파리에서의 꿈같은 한달살이를 마치고, 르아브르에 있는 학교로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학교 친구들과 함께 기숙사에 배정을 받았다. 월세를 내고 사는 스튜디오 개념인 사설 기숙사로 계약을 했는데, 주로 학교 학생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일단 1인실이라는 게 너무 좋았는데, 옆방의 친구들과도 가까이 왔다 갔다 하며 지낼 수 있었다. 파리에서는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나 홀로 동 떨어진 기분을 느꼈었으나, 이곳에서는 의지하며 지낼 친구들이 있어서 많이 외롭지 않았다.
기숙사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건물 삼면이 빙 둘러져있는 형태였고, 내가 배정받은 방은 복도 맨 끝 방이었다. 불행히도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5층까지 무거운 캐리어를 직접 들고 올라가야 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정말 외국이구나.' 하며 감탄했다.
현관 앞에 바로 화장실과 부엌이 있었고, 안쪽 문을 통해 침실로 이어졌다. 첫 느낌은 정말 깔끔했고, 심플했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인덕션 2구, 전자레인지, 식탁, 의자, 책상, 옷장, 침대, 협탁까지 전부 있어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처음 입주할 때 관리인이 동행해서 방 전체에 대한 점검내용을 종이에 적어놓고, 사인을 한 후 키를 넘겨준다. 이 과정을 일명 '에따드리우'라고 부른다. 한국에는 없는 공식적인 사전점검이라서 처음에 대충 보아 넘겼는데, 이게 나중에 방을 뺄 때 문제가 될지 전혀 몰랐다.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곳은 주방이었는데, 큰 창문을 열면 기숙사 마당이 바로 보였다. 창문에 방충망이라는 걸 찾을 수 없었는데, 1년간 모기가 한마리도 들어오지 않은 걸 보면 여름에 건조한 유럽날씨는 정말 축복받은 것 같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식탁 앞에 앉아서 밥을 해 먹으면 정말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1인 가구라면 당연히 원룸에서 지내야 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침실과 분리된 나만의 부엌 공간은 처음이라, '자취도 인간답게 할 수 있게 해 주는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에서는 보통 1인실도 부엌과 침실이 방문으로 분리된 공간을 의미한다. 한 사람이 사용하기에 답답하지 않을 정도의 필요 공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한국 밥이 그리워 중국인 마트에서 재료를 사 와서 한식을 자주 해 먹었는데, 이때 요리실력이 많이 늘었다.
그리고 침실은 가구와 벽이 노랑과 파랑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내 방이 북향이라서 여름엔 시원했지만, 겨울엔 라디에이터 하나로 버티기엔 너무 추워서 한국에서 전기장판을 공수받아야만 했다. 그래도 미니멀리즘을 잘 실천하며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기숙사 내부 구조는 모든 방이 각각 달랐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뽑아내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각각 매력이 다 다른 방이라서 친구들 방에 놀러가는 재미도 있었다.
화장실은 조그맣긴 했는데, 샤워부스까지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세면대에 샤워기를 설치해서 샤워를 하겠지만, 프랑스는 물 자체가 석회질이라서 바닥에 물을 뿌리면 마른 자국이 하얗게 남기 때문에, 건식과 샤워부스는 필수인 것 같다.
이곳 기숙사는 파리에서와는 달리 사설기숙사라 관리가 조금 덜 되었다. 프랑스인들은 주말에 밖에 나가서 노는 문화보다는 목요일 저녁 집에서 파티를 하는 문화가 더 일반적이다. 그래서 술과 음식을 싸들고 집에 와서 나눠먹으면서 음악을 큰 소리로 틀고 춤추면서 수다 떠는 게 정말 흔하다. 기숙사 내에서도 그랬던 적이 간혹 있었는데, 정말 시끄럽게 하면 경찰이 출동하기도 한다.
또 세탁실을 이용하려면 코인을 사서 세탁기에 넣어야 하는 아날로그 방식이었는데, 세탁기와 건조기가 다 끝났겠다 싶어서 내려오면,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해서 새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럴 때는 세탁기가 있는 원룸이 그리웠다.
방학 때마다 다른 유럽으로 여행도 다니다가 다시 돌아올 때면 정말 내 집이 된 기분이 들었다. 1년간의 학교생활이 끝나고, 정든 기숙사도 퇴실을 해야 할 때가 왔는데, 불행히도 르아브르와 프랑스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마냥 좋지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집 문제였다.
이때 바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입실 첫날 작성한 종이가 필요하다. 관리인이 다시 와서 보면서 내가 가구나 집을 파손을 안 했는지 종이와 대조하면서 체크한다. 방을 빼기 전에 청소를 직접 싹 다 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인건비가 비싼 프랑스에서 청소비를 많이 내야 한다. 청소비를 내지 않기 위해서 이틀 내내 짐을 싸고 집 청소만 했는데도, 관리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결국 내가 들어오기 전 미리 체크하지 못했던 매트리스 밑 쪽 곰팡이가 발견됐고, 청소비 등 금액을 보증금에서 깎여야 했다. 말이 정확히 통하지 않아서 무조건 내 잘못으로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억울했다.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상황이라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해결이 나지 않은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우리 학교 교수님이 잘 말씀을 해 주셔서 방을 뺀 지 장장 6개월 만에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 일처리가 아주 느리다는 것을 이때 뼈저리게 느꼈다. 속전속결인 한국의 원룸 계약 시스템은 정말 최고다.(방 빼는 날 바로 보증금 환급이 일반적인 케이스)
그래도 르아브르에서의 정말 많은 추억들이 떠올라한국에 돌아와서도 적응을 하기가 힘들었다. 르아브르는 해안도시이다. 집에서 좀만 걸어가면 바다가 나오는데, 정말 마을 바다라서 주민들이 많이 찾는다. 여름에는 남녀노소 수영복만 입고 햇볕을 쬐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해 질 녘 바닷가는 환상적이었다. 아직도 그날 본 바다와 하늘색을 잊을 수가 없다. 한 번은 패러글라이딩 연습을 하는 사람을 보았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이 멋졌다.
비록 프랑스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진 것도 있었지만, 그 밖의 새로운 모습들도 많이 발견하고 얻어갈 수 있었다. 처음으로 타국에서 혼자 지냈던 시간들은 내 안에 겹겹이 쌓여서,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항상 나의 무기가 되어준다. '그때도 힘들었지만, 지금 이렇게 무사히 잘 지내고 있잖아. 지금도 그때처럼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라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