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찬 원룸에서 꽉채운 2년
고시원에서 여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막 학기만 남은 졸업반이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는데, 이제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도저히 이대로 졸업을 할 수는 없어서 취업준비 명목 하에 휴학을 했다.
그때 마침 친오빠도 준비하던 시험을 때려치우고 군대에 가버리는 바람에, 계약기간이 남은 오빠가 살던 자취방을 이어받게 되었다. 어차피 오빠 학교와 내 학교는 가까웠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고, 휴학을 했기 때문에 더욱 상관이 없었다.
자취방은 원룸이었는데, 전에 내가 잠깐 살았던 원룸보다는 작은 1인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냉장고도 반토막이었고, 침대도 원룸에 딸린 완전한 싱글 침대였으며, 화장실도 한 명이 들어가면 꽉 찼다. 방안은 책상, 의자, 책꽂이, 옷장, 싱크대, 세탁기, 신발장까지 들어가 있어서 따로 돌아다닐 공간이 없어 나는 주로 침대에서 모든 생활을 했다. 조금 업그레이드된 고시원 느낌이었지만, 선택권이 없었던 나는 그런대로 만족했다.
몇 가지 장점도 존재했다. 일단 관리비에 전기세, 가스비, 인터넷, 수도세 등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었고, 복도마다 정수기가 있어서 매일 신선한 물을 바로바로 먹을 수가 있었다. 페트병 생수를 사 먹지 않았던 곳은 고시원을 제외하면 이때가 유일하다. 아리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있어서, 더운 여름 혹은 추운 겨울, 냉장고에 갑자기 물이 떨어졌을 때 바로 정수기에서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일단 오빠가 오래 살아서 주인 할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잘 알았고, 그래서 덕분에 나도 많은 보살핌(?)을 받았던 것 같다. 주인 할아버지는 전직 교장선생님이라 그런지, 성격도 한깔끔하셔서 건물 관리가 참 철저하셨다. 심지어 입구 화단에 누가 기대앉아 있는 것도 화단이 망가진다며 가만두지 않았고, 고장 난 것들도 말하면 바로바로 고쳐주셨다. 맨 위층에 할아버지네 가족이 살았는데, 사람이 없을 때 택배도 맡아주셨다.
그런데 이게 단점이 될 수도 있었던 게, 현관 입구 비번은 세입자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주인 가족만 사용했다. 세입자들에게는 카드키만 나눠주고 번호는 절대 절대 알려주지 않아서 지갑을 깜빡 잊고 잠깐 나갔을 때 다시 들어오기가 참 난감했던 적이 많다. 아마 주인네는 배달기사들이 건물에 자주 들락날락하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사실 배달기사분들은 비번을 어찌 알았는지 세입자들보다 잘 들어왔다.
아무튼 관리비를 낸 게 아깝지 않을 만큼 관리가 깐깐한 원리원칙주의 할아버지였는데, 부모님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안전이 최고라며 이백 프로 신뢰하며 매우 만족해하셨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 할아버지가 세입자 중 여학생들에게만 특별히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주셨던 적도 있었는데, 집주인에게 무언가를 받아본 적은 처음이라, 조금 감동을 했었다. 그때 이후로 다른 자취방에서는 주인집과 이웃의 정을 나눈 적은 없다. (간섭만 안 해도 다행;)
원룸 주변은 학생들의 밤이고 낮이고 떠드는 소리와 고물상 소리, 망개떡 아저씨 소리도 들리던 사람 사는 동네였는데, 여름이면 들리던 옥수수 아줌마 소리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아주머니는 항상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옥수수요, 옥수수요~!"하고 특이한 발성으로 옥수수를 팔았다. 주말 낮에 내가 뭉그적대고 있을 때 종종 들었는데 나가보면 그 한마디만 남기고 이미 사라져, 나는 그 옥수수를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다. 지금은 잘 계시려나 문득 궁금해진다.
집 주변에 동네 세탁소도 있어서 나는 이불빨래와 드라이를 자주 맡기러 갔다. 주인아주머니한테 받은 옷걸이를 모아서 다시 돌려드리면 참 좋아하셨다. 아직 대형 세탁업체가 대중화되기 전일 때라서 세탁소는 옷과 신발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한참 후에 다시 가보니 주인아주머니가 장사를 거의 접을 것처럼 하고 계셔서 못내 아쉬웠다.
그렇게 오빠가 군대에서 돌아오기까지 근 2년 동안 이 원룸에서 지낸 후 대학을 졸업하고, 오빠에게 원룸 바통을 다시 넘겨주었다.
그때는 다른 곳도 다 이렇겠거니 하면서 별생각 없이 지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에 남아있었던 참 정감 있는 동네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후 집들에서 집주인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중에 뼈저리게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유독 이 집에서 보낸 시간들은 좋은 기억이 많다. 나에게 있어서 마지막 학생 시절을 보냈던 소중한 보금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