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노량진 역 앞 원룸촌에서 1년을 보냈지만 그럴듯한 성과가 없었고, 답답한 노량진 중심가에서 벗어나 상도동 쪽으로 이사를 했다. 조용한 주택가였는데, 널찍한 방과 창문으로 옆집이 아닌 바깥 거리가 보이는 구조가 마음에 들어서 여러 고민 끝에 선택하게 되었다. 이 전에 첫 집을 고를 땐 부동산에서 우연히 만난 주인아주머니한테 집을 직접 소개받아서 들어갔는데, 주인집은 다른 건물이어서 분리수거할 때 빼고는 사는 동안 집주인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두 번째 집은 부동산이 소개해준 또 다른 부동산을 통해서 들어가게 되었다. 수험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노량진 중심가와는 달리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었다. 부동산이 집주인의 위임을 받아서 모든 것을 처리해서, 집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그 집은 집주인이 맨 위층에 거주하는 곳이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새로 이사한 집은 침대가 없어서, 주인집에 양해를 구하고 이사 전에 매트리스와 깔개를 미리 주문해서 배송을 시켰다. 그런데 배송일에 갑자기 주인집에서 불쾌함을 나타내는 전화가 왔다. 일전에 양해를 구했던 터라, 문만 좀 열어달라고 부탁을 해 놨었는데, 직접 와서 처리를 하라는 전화였다. 다행히 새 집까지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냥 물건 확인도 할 겸 학원강의가 끝난 후 직접 가서 방 안에 매트리스를 넣었다. 그때는 크기와 무게가 큰 물건이니 그러나 싶었다.
그렇게 이사를 하고 당일에 이사를 도와준 친구가 하루 자고 다음날 갔는데,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둘이 살면 관리비를 두배로 내라는 거였다. 나는 둘이 사는 건 아니고 친구도 집이 따로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아직 서로 얼굴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친구가 왔다 간 걸 아는 건지 너무 불쾌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 집과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이사하고 이틀이 지났을 때, 책장과 벽 사이에 곰팡이를 발견했다. 벽지를 뜯어 보니 벽 안이 온통 곰팡이로 물들어 있었고, 집주인에게 말해 다시 도배를 해야 했다. 집주인은 전에 살던 세입자가 환기를 안 시켜서 그렇다며, 도배를 해주면 되는 거 아니냐며 오히려 내가 호들갑을 떤다는 식이었다. 마치 내가 곰팡이를 발견한 게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새로 이사 온 집이니만큼 새로 시작하는 마음을 추슬렀다.
수험생활 2년 차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었던 나는 늘 집에서의 휴식이 간절했다. 그래서 일부러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건물의 맨 끝방을 골랐었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일단, 주인집이 맨 꼭대기 층이었고, 내가 2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집의 소음이 내 방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의자 끄는 소리부터 아이들이 달려 다니는 소리, 문을 쾅쾅 닫는 소리, 싱크대 물소리까지. 매일매일 완벽한 화음이었다. 심지어 아래층 에어컨 실외기가 내방 창문 벽에 설치가 되어 있었는데, 너무 낡아서 벽을 타고 울리는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아래층 세입자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고 사는 사람이었다. 실외기를 아래층으로 옮겨주던지 옥상으로 옮겨달라고 말도 해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덕분에 나는 밤마다 귀마개를 하고 잠들어야 했다.
오래된 주택가여서 고양이들이 참 많았는데, 날이 따뜻해지면서 골목에 고양이들이 짝짓기를 하는 소리가 많아졌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 창문을 열고 방에 있었는데,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은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골목의 고양이가 아닌 바로 위층에서 나는 소리임을 깨달았다. 한참이 지나도 아주 보란 듯한 그 소리에 나는 위층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조용해지는 듯 싶더니 야동을 틀어놓은 것 같은 소리는 계속됐고,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주인집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그 집 세입자인 남학생은 그날 없었고, 그동안 누나가 사용을 했다는 거였으며, 본인 집이 시끄럽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는 진짠지 거짓인지 모를 황당한 답변이었다. 그 후로도 위층의 층간소음은 빈번했고, 이야기해도 나아지는 건 없었고, 대면했을 땐 되레 '그럼 무릎으로 기어 다녀요?'라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집주인이 했던 가장 최악의 행동은 바로 cctv로 세입자를 감시하는 거였다. 게다가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나는 그동안 원룸의 cctv는 문제가 일어났을 때 내부인을 위해 외부 침입자를 확인하는 용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생각이었고, 집주인의 생각은 달랐다. 그 건물의 cctv는 내 방 바로 앞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방에 들어갈 때마다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우선 집주인은 세입자가 누구랑 들어가고 나가는지, 분리수거를 잘하는지, 현관문을 닫고 들어가는지 등 모든 것을 본인 집 거실 tv화면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분리수거를 똑바로 하지 않으면 바로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야단을 하고, 현관문을 닫지 않으면 방금 문 열고 나갔냐며 확인을 했다. 월세와 관리비까지 내는데 본인들은 도대체 왜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세입자들의 행동만 일일이 감시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사생활을 감시당하는 기분이 얼마나 불쾌한지 그때 깨달았다.
이 집에서 버틴 1년이 나에겐 너무나 길고 버거운 시간이었는데, 공부에 대한 압박감과 집에서의 압박감 때문에 나중에는 최대한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밤 늦게까지 독서실에 있었다. 급기야 끝이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를 피해 중간에는 갑자기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했다가 떨어지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잠시 도피성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다시 왔을 때는 도로 제자리였고, 시험일은 다가왔다.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이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만 궁리했다. 이곳에서 하루하루 살아나가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서러웠고, 뻔뻔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싫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층간소음과 신뢰가 무너진 집주인과의 관계가 더해져 나의 정신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내 집에서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2년 6개월의 노량진 생활을 버틴 나에게도 볕뜰날은 왔고, 나는 '합격자의 방'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집주인에게 합격 소식을 알리지 않는 작은 복수를 하고 방을 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방이었기에 그 방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때 더 공부를 치열하게 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노량진에서 보았던 무지개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잠깐 밖에 나왔는데, 커다랗고 또렷한 쌍무지개가 길 한복판을 그리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 감탄을 내뱉었는데, 그때 문득 하늘이 노량진에 이렇게 커다란 무지개를 선물해주는 게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무지개를 함께 본 모두가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