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th. 나만의 비밀공간

아담한 베란다와 부엌이 있는 집

by 성냥

겨울에 집을 구하기란 참 힘든 과정이다. 매서운 한파를 뚫고 새로 살 집을 구하러 이리저리 발품을 팔던 나에게 눈에 띄는 집이 있었으니, 베란다가 있는 아담한 원룸이었다. 곧바로 부동산에 연락을 해서, 독일병정처럼 키가 크고 무뚝뚝한 부동산 아저씨의 안내를 받아 방을 보게 되었다. 큰 기대 없이 보러 갔던 나는 또다시 금방 새집에 반해버렸다. 자주 이사를 다닐수록, 빈 방을 볼 때 그 안에서 어떻게 살지 곧바로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마침내 기대와 꼭 들어맞는 방이었던 것이다.


우선 이 방은 마치 외국의 게스트하우스와 같은 외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외부에서 카드키를 통해 바로 엘리베이터로 입장할 수 있었으며, 청록색의 넓은 계단과 복도를 통과하면 방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방의 구조도 매우 특이했는데, 내부가 넓진 않았지만 일단 층고가 한 2m 이상은 되는 높이여서 좁다는 느낌은 별로 받지 못했다. 부엌과 방은 커다란 냉장고를 사이에 두고 분리된 듯한 형태였다.

그리고 기다란 방을 따라 베란다가 이어져, 그 베란다로 통하는 창문과 문이 카페에서 사용할 법한 모양이었고, 모든 문은 커튼 대신 반자동의 셔터를 내리고 올려서 외부를 차단할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깔끔한 모노톤의 벽지와 가구들도 보기 좋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주인이 외국생활을 한 사람들이라, 집 구조와 분위기도 마치 외국 같은 느낌이 났던 것이었다.


당시 내가 식물에 한창 빠져있을 때라서 무조건 식물들을 위한 베란다가 있는 집에 갈 거라며 다짐했는데, 마침 나를 위한 공간이 딱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전 집보다 오만 원이 절약된 금액으로 바로 계약을 하고 이삿날을 잡았다. 이사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아서 물건을 직접 이고 지고 날라서 이사를 했다.


나의 베란다 정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간은 베란다와 부엌이었다. 베란다는 나만의 작은 정원으로 만드는 재미가 있었고, 아담한 부엌은 내 맘대로 요리를 펼칠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방에서 지낼 때는 마치 예술가가 된 것처럼 취미를 이것저것 늘려갔다. 전자피아노도 연주하고, 그림도 그리고, 텃밭도 가꾸고 심지어 텃밭에서 키운 배추로 김장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원룸에서 김장을 해본 경험은 흔치 않을 일이다.


아담한 방과 부엌

처음 들어가고 마지막 나올 때까지 큰 문제없이 잘 지냈던 곳이었다. 그중 한 이유로 무엇보다 꼭대기 층에서 같이 살고 있음에도 세입자를 믿고 세입자의 생활에 대해서 전혀 터치하지 않았던 주인 할머니 덕분에 마음 편히 생활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월세살이로 살아본 결과, 집주인과의 관계에 문제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싶다. 이 집은 내가 가장 오랫동안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나중엔 물건이 너무 많아져서 아늑한 이 방 크기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집을 옮겨야 했지만..)

이사 전 마지막 날 새 주인을 맞게 될 빈 방을 보니 내가 처음 이사한 날의 설렘도 생각나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수많은 이사를 다녔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는데, 이 집에 좋은 기억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추운 겨울을 두 번 나고, 집에 대한 눈이 높아진 나는 마침내 방이 분리된 집으로 열한번째의 이사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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