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임대주택 입성기
나의 열한 번째 집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다. 그 전과는 달리 임대주택이라는 점이 가장 큰 변화였다. '원룸'을 벗어나고자 무려 6개월간 주변의 방을 샅샅이 보러 다닌 노력을 했음에도, 적당한 가격과, 적당한 크기와, 적당한 위치와, 적당한 쾌적함과, 적당한 주인집과, 적당한 분위기의 집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일하다가 부동산에서 연락이 오면 점심시간을 쪼개서, 혹은 퇴근 후 재빨리, 아니면 아예 연차를 내고서라도 집을 보러 다녔고, 막판에는 근처 부동산을 모조리 알게 되었다.
부동산마다 특징이 조금씩 다른만큼 매물도 달랐다. 거의 중독이다시피 틈나는 대로 발품을 팔았지만 나의 입맛과 취향을 존중해주는 부동산업자를 만나기가 참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주로 온라인 부동산 어플로 실시간 매물을 미리 확인하고 부동산에 연락했다. 허위매물인 곳도 더러 있었지만, 요즘에는 부동산에서도 숨겨진 매물보다는 온라인에 최대한 빨리 올려서 매물이 빠지도록 하는 게 추세인 듯하다. 가끔은 보고 싶었던 방을 보려면 다른 하위의 매물을 끼어서 봐야 했던 적도 있었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겼는데, 부동산에서 추천해주는 매물을 보지 않고, 바쁘니 원하는 곳만 보고 가겠다고 말하면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매물은 없었다. 방을 재계약하는 시기는 점점 다가왔고, 4개월 전에 넣어둔 역세권 청년 주택 발표일은 점점 미뤄지던 와중, 구청 홈페이지에서 새로 뜬 민간임대주택 공고문을 보게 되었다. 이 또한 가까운 역세권이었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해당일에 청약을 넣어보았다. 민간임대라 그런지, 매우 빨리 결과가 나왔는데, 입주자로 선정되었으니 언제까지 계약을 진행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한 달 뒤, 나는 얼떨떨한 채로 사전점검을 가게 되었다. 그즈음 청년 주택에도 오라는 손짓을 받았지만, 가격 대비 위치와 기본 옵션에 대한 메리트가 없어서 포기를 했고, 민간임대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사전점검을 위해 건물에 들어가서 내 방을 보게 되었을 때, 나는 환호했다.
내방은 분리형 원룸으로 방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었고, 부엌에는 아일랜드 식탁이, 맞은편에는 베란다가 있었고, 붙박이 옷장, 붙박이 찬장, 붙박이 냉장고, 세탁기, 신발장, 펜트리, 샤워부스, 높은 천장, 커다란 창문, 예쁜 조명과 벽이 있는 내 로망 속의 집이었다. 몇 가지 눈에 보이는 하자들만 우선 점검하고, 다음 달에 계약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보증금이 천 단위인 월세살이만 했던 터라, 1억이 넘는 반전세로 가게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 두려웠다. 주변에서 주인이 보증금을 떼어먹고 도망갔다느니 하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동안 큰돈이 드는 거래를 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법인이 소유하는 건물이기도 해서 조금 더 믿고 계약을 진행했다.
자금 마련을 위해 내 생애 최초로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을 신청하게 되었다. 다행히 1억 원의 대출이 가능했고, 나머지는 내가 모은 돈과 부모님의 도움을 통해서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계약서 도장까지 찍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본가에 방치돼 있었던 내 물건들과 이전 원룸의 짐들을 한꺼번에 이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삿짐들을 모두 정리하고 보니, 마침내 뿔뿔이 흩어져 있던 나의 조각들이 모두 모여 완전체가 된 느낌이었다.
한 달여를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기쁨도 잠시 또다시 고난이 찾아왔다. 가장 크게 두 가지 사건이 터졌는데, 첫 번째는 '관리비 문제'였다. 관리비가 같은 평수의 일반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이 나온 것이다. 한 달 관리비가 20만 원에 육박했는데, 처음 계약할 때 들었던 것과는 너무 차이가 심해서 입주자들 모두 패닉에 빠졌다. 마침내 온라인 연락을 통해서 입주자회의까지 꾸려, 건물 주인인 시행사와 면담을 하기에 이르렀다. 우선 일반관리비 인건비, 상가와의 전기세 분리 등 우리들이 아는 선에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국 돌아온 대답은 '다른 곳도 다 이만큼 나오고, 입주 초기에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하나마나한 답변이었다. 입주자가 젊은 직장인 위주여서 대표를 선출해 위원회를 꾸리기도 어려운 사정임을 알고서 시행사는 대충 넘어가려는 듯했다.
이런 터무늬 없이 높은 관리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입주자들 몇 명이 시청, 구청, 신탁회사, 심지어 자금을 지원해준 LH에까지 민원을 넣어보았지만, 150세대 미만인 건물의 세입자를 도와줄 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행사는 입주자들을 그저 세입자로만 여겼고, 관리비를 받아 처리하는 관리소장은 모르쇠로만 일관하다가 결국 다른 곳으로 도망가버렸다. 말 그대로 법의 사각지대였다.
두 번째 사건은 끔찍한 '바퀴벌레의 출몰'이었다. 첫 발견은 옥상에서였다. 옥상정원에서 운동하던 입주자들이 커다란 바퀴벌레들이 벽마다 붙어있다는 제보였다. 실제로 수많은 바퀴벌레들이 옥상에 서식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틈만 나면 엘리베이터에서, 계단에서, 복도에서, 현관문 앞에서 바퀴벌레를 보았고, 심지어 집 안까지 출몰한 집도 생겨났다. 나는 아침마다 베란다에서 약을 먹고 죽어있는 벌레 시체를 보는 게 너무 싫어서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이렇게 큰 바퀴벌레를 이 정도로 많이 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동안 원룸촌에서 살았어도 벌레 한번 못 봤었는데, 고층인 신축 건물에서 보게 되다니.. 바퀴벌레가 이렇게 끈질긴 징그러운 생명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물론 벌레 퇴치에 관해서도 시행사에서는 누군가가 이사 오면서 생긴 거라고 주장하며 나몰라라 했고, 열 받은 주민들은 모두 합세해서 시행사의 답변을 요구했다. 점점 심해지는 바퀴벌레의 출몰에 스트레스가 쌓여가던 중, 마침내 정기적인 일괄 소독을 진행하겠다는 시행사의 답변을 얻어낼 수 있었다.
아직도 관리비는 들쭉날쭉하고, 언제 무슨 문제가 터질지 몰라 걱정스럽지만, 그럼에도 나 스스로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고, 변화된 환경에서 독립된 생활을 해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11년간 열한 번의 이사의 도전을 기록하면서, 내가 그동안 어떤 집에 어떤 심정으로 들어갔었는지, 어떤 문제들을 맞닥뜨렸는지 하나하나 떠올리다가 그때의 내가 이제 조금은 단단해짐을 느낀다. 앞으로 내가 거쳐가야 할 집이 아직도 많을 것 같다. 집의 변화와 함께 나 또한 성장해 나갈 거라고 믿으며,
오늘도 달콤한 나의 집에서의 하루가 지나간다.
1인 가구의 주말은 무엇이든지 내가 할 일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멋진 시간이다. 내가 방해받지 않고 온전한 나만을 위한 하루를 만들어갈 수 있다.
나는 집에서 아침, 낮, 저녁, 밤마다 수시로 바뀌는 탁 트인 하늘을 볼 때가 제일 좋다. 덕분에 나의 반려식물들도 따뜻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