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th. 노량진에서 일년

고립된 수험생활

by 성냥

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깊은 고민을 하지 못한채 급하게 취업이 아닌 시험을 택했다. 이것저것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결정이었다. 부모님은 내 결정에 처음엔 반대했지만, 나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처음 나는 시험을 나의 장래와는 별개인 하나의 과정으로만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약간의 도피성과 함께 노량진에 입성했다. 그때만 해도 노량진 역과 수산시장이 재정비되기 전이여서, 노량진 특유의 비릿하고 무거운 공기가 나를 맞아주었다.


말로만 들어봤던 노량진은 나에게 처음엔 두려운 곳이었다. 한번 발을 디디면 원하는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못 빠져나올 것만 같았다. 학교를 졸업한 후 잠시 고향에서 지내다가 서울에 올라와 부동산 발품을 팔아 하루 만에 노량진 원룸을 구했다.

노량진엔 원룸이 참 많았다. 원룸촌의 수많은 방을 돌아다닌 끝에, 학원과 독서실이 가까운 쪽에 있는 집을 선택했다. 6층짜리 건물에, 각 층에 7개의 방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내 방은 복도에서 보면 정면에 바로 보이는 방이었는데, 부동산 아주머니는 일명 '합격자의 방'이라고 소개해주셨다. 이 방에서 살던 전 세입자가 합격을 해서 나갔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어서인지 방에 들어선 첫 느낌은 차분하고 조용했다. 북향이었고 옆집이 창문으로 바로 보이는 구조였다. 침대, 매트리스, 세탁기, 싱크대, 옷장, 책상, 의자, 책장, 신발장이 옵션이었고, 화장실은 불투명한 유리문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하루 안에 집을 구해야 해서, 바로 계약을 했다. 다른 집들을 보러 갔지만, 위치가 애매한 데다 시설이 너무 낡고 관리가 잘 되지 않는 느낌이어서 이 방이 그중에서 가장 나아 보였다. 그리고 한 달 뒤 짐을 택배로 보내고 이사를 했다.


노량진은 수험생들의 천국이었다. 모든 시스템이 '공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학원, 독서실, 서점, 식당, 카페, 마트 등 모두가 노량진인들의 소비를 통해 운영되고 있는 신기한 곳이었다. 사람들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다. 길거리를 다닐 때에도 모두가 후줄근한 복장으로 다녔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입고 다녀도 솔직히 마음이 편했다. 모두가 같은 입장에서 열심히 싸우는 동지 같았다. 그렇게 유대감을 느끼면서도, 타인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피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익명의 관계 속에서, 옆 건물 방에서 울리는 LG폰 굿모닝 모닝콜이 아침을 깨웠고(난 아직도 이 노래가 정말 싫다.), 복도에 울리는 tv소리가 휴식을 방해했다. 나는 그렇게 점점 예민해져 갔고, 나도 모르게 그곳에 고립되어갔다.

가끔 창문 밖 건물 사이에 종종 고양이가 쉬러 온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곳이 사람들의 눈을 피한 고양이 화장실이었던 것 같다. 볼일을 보던 고양이는 나와 눈이 마주쳐 깜짝 놀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뭔가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노량진에서 첫 1년을 많은 학원 강의와 모의고사, 독서실 출근, 노량진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것으로 똑같은 매일을 보냈다. 먹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나는 노량진 맛집지도를 그릴 정도였다. 1년 정도는 공부만 했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공부하고 있다'는 것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수험생활의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러나 노량진에서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가 가망이 있는지를 되물었고, 절박한 분위기의 그곳에서 압박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합격자의 방에서 합격을 하지 못한 채, 나는 내 선택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원룸 창문 밖에 놀러온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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