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갖는다는 것
소비자마다 와인에 대한 취향이 있고, 자신의 취향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취향에 따른 구매를 한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 해외여행이 중단되면서, 나 또한 다른 여행러들처럼 예전에 다녀온 여행을 추억하며 달라진 일상을 지내는 중이다. 갈 수 없으니 더욱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던 중 나에게 애증의 나라인 프랑스의 '시골'에 관한 책이 나온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덥석 읽게 되었다. 벌써 10년 전이 되어가고 있는 나의 프랑스 체험이 생각난다.
특히 프로방스 지역에서 엄마와 함께 보냈던 며칠이 가장 기억이 난다. 참 젊은 엄마와 어린 나였고, 프로방스의 눈부신 7월 햇살과 나풀리던 색색의 꽃무늬 천이 떠오른다. 노란색의 건물들과 반짝이던 분수가 있었던 곳.
이 책에서 보니, 프로방스가 라벤더의 최대 생산지며, 그 보라색이 넘실거리는 라벤더 밭은 6월 말에서 7월 중순까지가 가장 장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가장 아쉬운 점은 그때 엄마가 전단지를 보고 가보자고 했던 라벤더 밭을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기회였는데, 시간에 쫓기고 체력을 못 이겨 아깝게 포기해버렸다. 내가 조금 더 여유롭고 용기가 있었더라면 엄마와 좋은 추억을 남겨올 수 있었을 텐데.
엄마가 좋아하는 보랏빛 라벤더 꽃을 함께 본다면, 여유로운 프랑스 시골 풍경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프랑스에서 1년이나 지내면서 프랑스 시골을 가보지 못했던 게 이렇게 후회될 줄 그땐 몰랐다. 처음 단둘이 짧은 여행을 다니는 동안, 햇살처럼 환하게 웃던 엄마의 얼굴이 내 머릿속에 아직도 선명하다.
프랑스가 선진국인 것은 GDP가 높아서가 아니라 시골이 깨끗하고 아름다워서다. 농담이 아니다. 선진국일수록 시골이 깨끗하다. 선진국의 대열에 끼지 못한 나라들은 아무리 그 수도와 대도시들이 번쩍이고 화려해도 시골에 가면 선진국이 아닌 이유가 분명히 드러난다. 시골은 숨길 수가 없다.
최근 유럽의 선진국이라 불리던 나라들의 허점과 위선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그래도 저자가 말한 위의 말에는 동의한다. 비록 수도인 파리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좋지 않지만, 좀 더 지방, 특히 남부지방에 대한 기억은 참 좋다. 이민자들이 적고 인구가 적어서일까? 지중해 햇살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밝고 여유롭게 느껴졌고, 동네의 거리가 참 깨끗하고 정돈이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은 마을일수록 훨씬 관리가 잘 되고 있었고, 시장과 상점에서도 이웃 간의 정겨움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의 시골은 마지못해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라면, 어쨌든 프랑스는 시골로 갈수록 훨씬 넉넉하고 풍족하게 사는 것 같았다. 부럽기도 했다. 시골에 살아갈 것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동안 만족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물론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 집을 짓고 정착해서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시골이 생존을 위한 것을 넘어 한결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시골도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음식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풍족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 아니한가. 허기를 채우기 위해 힘겹게 채집하고, 양을 늘리기 위해 맛없고 질긴 부위까지 끓여서 먹어야 한다면 예술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생존을 위한 절절한 현실에 더욱 가까워질 뿐이다.
음식이란 삶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못 먹고 못살던 시절에는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음식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예술작품이 된다. 나는 요리가 예술의 총체라고 생각한다. 눈, 코, 입, 귀, 손의 모든 감각을 즐길 수 있는 게 바로 요리다. 모든 감각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능력이다. 늘 먹던 것 외에 최대한 많은 맛을 경험해보는 것은 창의성과 다양성을 자극하고 끄집어낼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어릴 때일수록 다양한 맛에 대한 노출은 삶을 단단하게 살아가기 위한 충분한 거름이 될 수 있다.
메인 디시를 끝내고 플레이트를 물릴 때쯤, 저 멀리서 카트가 돌돌돌 굴러들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것이야말로 프렌치 퀴진만의 특징이고, 다른 문화권의 가스트로노미에서 흉내내려고 해도 하기 힘든 프렌치 가스트로노미의 정수다. 천년이 넘는 지리적 특성과 지역 문화가 녹아 만들어낸 프랑스만의 독특한 그 무엇이니 그럴 수밖에.
... 또 프랑스 소비자들의 와인에 대한 높은 관여도가 다양한 와인을 계속 생산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소비자마다 와인에 대한 취향이 있고, 자신의 취향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취향에 따른 구매를 한다. 다양한 와인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포도 농업과 와인 제조의 역사를 보면 자본과 농업이 어떻게 결합이 되고, 이에 따라 어떤 식으로 산업이 발전하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프랑스에 갔다면, 지역마다 와인 한 병씩 꼭 마시고 왔을 텐데. 술을 잘 모르고 와인에는 더더욱 문외한인 나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술알못에게 와인에 대한 작은 관심을 싹 틔우게 만들어 준 고마운 책이다. 와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와인의 종류와 유래, 각 지역의 훌륭한 와인에 대해서 부담없이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또한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을 엿볼 수 있었고,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정말로 와인에 진심인 사람들인 것이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들의 진심은 세상 사람들의 감각을 사로잡았고, 그들의 노력은 그들의 와인을 최고로 만들었다.
오랜만에 즐거운 상상과 함께 기분 좋은 다짐을 해본다. 언제 한번 마트에 가서 책에서 얻은 지식들을 써먹어 봐야겠다. 책을 읽는 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을 느끼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나도 나만의 '맛과 멋'을 지닌 사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