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 말고 결혼주의자
남편이 뱃사람이 된 지도 벌써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7, 8월 금어기를 제외하면 실제 조업을 나간 기간은 얼마 되지 않은 아직은 햇병아리 어부이다.
직업 군인의 아내로 시작했던 나의 결혼 생활은 결혼 10년 차에 접어들어 어부의 아내로 항로가 변경되었다.
보통은 일주일 치 일기예보를 매일 같이 확인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요즘은 워낙 날씨가 수시로 바뀌어서 하루 전날 작업 계획을 세워도 무산되는 날이 많았다.
그의 직업이 바뀔 때마다 아내인 나의 생활 패턴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군에 있을 때는 당직을 제외하고는 주말이면 같이 휴일을 즐길 수 있었고, 중소기업 인턴 시절에는 거의 휴일 없이 지내면서 평일에 휴가를 내며 쉴 수 있었다. 그 덕에 나는 매 번 다가오는 주말을 아이들과 씨름을 해야 했었지만, 서글픈 마음이 많이 들 때마다 힘들게 일하고 있을 그를 떠올리며 원망은 할 수 조차 없었다.
하늘의 장난처럼 이제 그에게는 정해진 휴일은 없다.
비가 많이 오면 쉬고 그마저도 육상에서 작업할 일이 있으면 나가야 한다.
어제 같은 경우에는 아침에 해가 쨍쨍하더니 점심 전후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어장에서 해야 할 작업이 많아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일을 계속하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돌아왔다고 한다.
이렇게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날에는 일기예보보다는 30년 넘는 경력의 선장님의 감에 기대며 그의 연락을 기다린다.
답장 없는 메시지를 보내며 수 십 번의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기다리는 아내는 선장님 번호가 핸드폰에 뜨자 가슴을 쓸어내린다.
“여보, 나야. 이제 일 끝나고 배 타고 들어가는 길이야.”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기를 간절히 원했더니 거짓말처럼 생사를 걱정해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30년이 넘는 시간을 바다와 함께 보낸 아버님의 아내, 어머님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본격적으로 조업이 시작되면 보통 새벽 1시에 기상을 한다. 그때부터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하고 종교도 없는 어머니는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그렇게 남편과 아들을 까만 어둠 속 바다로 보낸다.
그리고는 새벽 3시쯤부터는 집안 청소를 시작하신다고 했다. 그렇게 마음을 달래며 그들을 기다리시는 것 같았다.
그 시각 다른 집에 있는 뱃사람의 아내인 나는
두 아이를 토닥이며 침대에 누워 선 잠을 잔다.
조업이 없는 요즘은 새벽 4시에 일어나 40분 거리로 출퇴근을 하는데 행여나 어린아이들이 깰까 싶어 일어나지는 못한 채로 문이 닫히는 소리로 그의 출근 신호를 듣는다.
아이들을 챙겨 보내고 나면 나는 나대로의 의식을 치른다. 어머님의 기도처럼 나도 집안을 정리하며 감사한 일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는 더욱 철저하게 개인적인 일들을 시작한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철학적인 내용의 영상을 본다.
이러면 조금이라도 내가 더 굳건해지는 느낌이 들어서다.
오늘도 비가 꽤나 내릴 모양이다.
밀린 일들이 많아 비가 와도 배를 타고 나가서 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그의 연락을 기다리며 ‘아빠만큼 듬직한 엄마로 하루를 보내야지.’ 하며 잠든 아이들을 토닥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