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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채 Sep 28. 2023

제사음식 하는 게 힘든 건 아니라고요. 가장 힘든 건

일 핑계로 안 가면 참 좋겠다





추석 이틀 전, 소화가 잘 안 돼서 소화제 두 알과 타이레놀 한 알을 털어 넣고 들어와 누웠다.


사람 좋아하던 내가 정신적으로 아프고 나서는 사람 많은 곳에 있는 게, 실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 빨리는 게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사람을 여러 명 만나고 오면 충전되던 사람이 언젠가부터는 한 명을 만나고 들어오면 한 일주일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졌으니 말이다.


결혼을 하고 나니 거의 매달, 혹은 두 달에 한 번 행사가 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빨간 날(공휴일)에도 슬쩍 예민해지기도 하고……





시댁은 바닷가 마을에 있다. 친척들이 모여 살고 계시고 우리 집에서는 40분 남짓한 거리이다.

가깝다고 하기엔 멀고, 멀다고 하기엔 가깝고.


아무튼 각자마다 상상하는 명절날 친척들의 모습이 있겠지만, 해를 거듭해 갈수록 내가 경험한 것과는 다른 문화라는 걸 많이 느꼈다.


그중 내가 제일 불편했던 건, 음식 하는 일도 아니고 설거지하는 일도 아니고, 시댁에서 자고 오는 일도 아니었다.


친척 집 인사를 가서 견뎌야만 했던 어색한 분위기……

다정한 대화라고 하기엔 보통 꼬투리를 잡고 툴툴 던지듯 하는 대화가 기본이라 내가 어떤 포지션을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었다. 그건 1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


남편이 가장 어린 축에 속하고 철부지 이미지를 담당하고 있는 탓에 친척들로부터 이런저런 잔소리 비슷한 걸 듣고 있는데, 대화 방식이 모두 툴툴툴한 느낌이라 여전히 나는 이곳에서 무슨 말을 같이 나누고 있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남편을 쉴드해야 할지, 말씀들에 동의하고 있어야 할지. 덕분에 어색한 웃음만 는다.


더군다나 한참 후에 알게 된 우리 어머님과 친척 분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까지……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들이 다 읽히는 나의 예민함이 참 쓸데없이 잘 작동한다 싶을 때도 많고.


인사하고 오는 몇 분이 뭐라고 그게 참 불편하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서 얼른 집에 가자는 아이들의 칭얼거림을 받으며 대뜸 일어나서 “저 가보겠습니다.”하기도 뭣한 상황.




손님이 오면 너나 할 것 없이 안아주고 반겨주시던 우리 큰집의 풍경. 공부 잘하냐는 말로 아프게 하는 사람 없이 행복했던 기억.


서울에서 태어나 이 먼 곳에 와서 살고 있지만

명절이 돌아오면 서울 그곳, 우리 친척들 다 모여 즐거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미국, 경기도, 대구 등지로 다 흩어지고 우리 부모님도 지방으로 내려오셔서 서울에서 모이는 일이 가뭄에 콩 나듯 하는데, 이제는 친척집에 모여 도란도란하던 걸 할 수 조차 없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쓸쓸하게 한다.


‘너무 멀리 시집을 와버렸네……’



그걸 매년 이곳에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느낀다는 게 나만 불편한 마음.



오늘은 추석 전 날이다.

연휴가 시작되었다고 아침부터 시끌시끌 기분 좋아 떠드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음식 준비를 한다.


‘음식 해서 천천히 온나’

하시는 말씀이 진짜 천천히는 아닌 걸 알기에

점심 전에는 끝내야지.





* 제 글 읽어주시는 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해드립니다. 푸념이 아닌 희망의 글을 쓰고 싶었는데 푸념 글이 되어 보시는 분들이 더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되기도 하네요. 아무쪼록 명절 연휴 잘 보내시고 ‘살 안 찌는’ 추석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들러주셔서, 읽어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 작가 홍은채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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