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 말고 결혼주의자
우리 때만 해도 소위 사랑만 가지고 결혼하는 커플들이 있었는데, 어느덧 조건을 따지는 것을 넘어서서 결혼 가능한 조건의 틀 같은 게 생겨나고 그러고부터는 비혼이라는 말이 적극적으로 대두되었던 것 같다.
물론 요즘도 분명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커플들도 있겠지만, 결혼 생활이 지속되다 보면 현실에 찌들어서 사랑이 흐려지기도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10년 차 결혼 생활에 남편의 불안정한 고용 상태, 고시 생활, 백수 그 모든 걸 함께 하며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건 몰라도 부부관계만은 절대 실패하지 않으리 다짐 아닌 다짐 같은 걸 했었던 것 같다.
살다 보면 싸울 일이 참 많다.
더군다나 코로나가 극성이던 시기에 어린아이들을 키웠기에 이웃과 어울려 육아 소통을 하거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들이 적었고, 살던 곳을 떠나와서 남편 하나만 보고 이 지역에 정착하게 된 나는 늘 남편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넉넉지 않았던 형편에 늘 아껴도 부족한 것 같아 속상할 때도 많았지만, 어릴 적 부모님을 떠올리면서 적어도 '돈 때문에' 싸우지는 말자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나 역시 밖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남편이 안쓰러워지고 남편 역시 늘 나에게 더 좋은 걸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 같다.
'돈 걱정 안 하고 살면 참 좋겠다.' 이런 말을 하면 남편이 속상해할까 봐 살면서 꺼내본 적 없는 말을 어젯밤 느지막이 꺼냈다. 한숨으로 대답이 돌아오면 어쩌나 내심 소심해져 있는데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돈 걱정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라며 미소 지으며 대답해 주는 모습에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결혼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건, 남편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될 때였다. 번듯한 직장, 아니 어디 회사에라도 다니고 있으면 그래도 남편의 고시생활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고, 그저 그의 한숨을 듣고 속으로 울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과정 안에서 다양한 걸 시도하고 심지어 이렇게 글도 쓰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경제적으로는 그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음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이번 주도 그의 로또에 대박의 기운을 불어넣어줄 뿐이다.
어느 정도 결혼의 굴곡을 겪고 10년쯤 지나니 힘든 일들에 무뎌지기도 한다. 다 한 때고 어쨌든 지나간다는 걸 깨닫고 우리 둘의 삶을 돌아보니 내가 결혼을 통해서 인간적으로 참 많이 성장했음을 느낀다.
그 시간 동안 크게 깨달은 1가지가 위의 제목이다.
결혼할 때 이걸 꼭 생각해봤으면 하는 것이 있다.
다른 글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얼마나 이타적인 사람인가.'를 꼭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사랑을 해도, 조건이 다 맞아 들어가도 상대를 극진하게 배려할 수 있는 유연함이 없다면 그 결혼은 힘들어진다. 우리나라가 예전부터 워낙 획일화를 강조했던 사회이다 보니 요즘은 '내 감정이 먼저다', '나를 챙기자'라는 말들이 꽤 많이 유용하지만, 결혼에서 만큼은 '내 감정'만큼이나 상대방의 감정을 읽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 기본이 갖춰져야 사랑도 조건도 빛을 발할 수 있다.
아이들 육아로 이야기를 연장해 봐도 마찬가지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위하는 부부를 보며 자란 아이들은 그게 몸에 배여서 사회성이 좋은 편이다. 불안도도 낮아서 새로운 일에 대해 두려움을 품고도 안정적으로 도전을 해낸다.
한 번은 내가 매 번 늦는 남편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빼놓는 게 습관이었는데, 8살인 둘째가 소풍을 갔던 날 학교에서 제공해 준 버거킹 햄버거를 그대로 들고 집으로 온 것이다.
왜 그랬냐 물으니, "아빠가 좋아하는 햄버거라서 가져왔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본인은 다른 음식을 친구들과 나눠먹었다고 말했다.
결혼의 조건을 딱 1가지로 공식화해보자면,
이타적인 사람+이타적인 사람 = 예쁜 가정
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예쁘게 자란 아이들이 세상에 나와 또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