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은채 Oct 23. 2023

남편이 울었다.

저는 어부의 아내입니다.








오래전 원시시대 사람들은 쫓아오는 짐승을 피해 숨어 살며 굶주림과 기후변화에 그토록 불안해하며 살았다고 한다. 현재의 우리는 어떠한지 생각해 보면 대상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불안하고 두렵고 무서운 삶을 버티며 살고 있지 않나 싶다.

내 경험으로 원시시대 그들을 쫓아오던 무서운 짐승의 역할을 돈이 대신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남편이 뱃일을 시작하고 나서 의외의 곳에서 짐승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직장인 대출을 받았던 것이 다음 달로 만기가 도래했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당장 상환할 돈 천만 원을 준비하라는데, 한 달 남짓 남은 시점에서 우리가 무슨 수로 천만 원을 만들어내야 할지......

그저 눈앞이 캄캄해졌다.

수험생활을 시작한 나는 책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고, 당장이라도 짐승이 덮칠 것처럼 심장이 하루 종일 두근거렸다. 공부하는 틈틈이 일자리를 검색해 봤지만, 이 작은 도시에는 채용공고가 몇 페이지를 넘지도 못하고 계속 제자리라서 한숨만 쉴 뿐이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남편의 메시지에 영 기분이 편치 않았다.

묘하게 투덜대는 듯한 말투에 안 그래도 불안해죽겠는 마음이 고조되었고 화가 날 지경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온 그는 연신 한숨을 쉬어댔다.


가만히 보던 나는 결국 '참을 인'자를 내던져버렸다.




먹먹하던 그의 얼굴에 눈물이 고였다.

오늘 일하는 동안 선장님에게 욕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평소에는 너무 인자하신 시아버님은 배를 타면 돌변하시는 모양이었다. 물론 뱃일이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많기에 얄짤없이 혹독하게 일을 가르치신다고는 익히 들었었다.

‘욕은 기본이고 그렇게 그동안 많은 선원들이 떠났나 보다.’하는 남편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안 그래도 돈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온몸이 마비되는 기분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숨이 턱턱 막히면서 전신의 신경이 다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마 나만큼 남편도 그래서 서러웠었나 보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집에 오겠다며 터덜터덜 마을을 걸어 나오는데 이웃에 뱃일하는 누님께서 "그래도 너는 아버지한테 욕 듣는 거잖아. 나는......"이라며 위로를 건네었다고 했다.








세상에 해결 못할 일은 없다며 가끔 악다구니를 쓰는 나도 돈 앞에서만큼은 사실 겁쟁이가 된다.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봤다. 결국은 4대 보험이 문제였다 싶어 그날 아이들과 함께 다 같이 시댁으로 향했다.

그렇게 아버님께 4대 보험 가입을 꼭 해야 했었다며 설명을 드리고 최대한 빨리 처리해 달라고 조근조근 부탁을 드렸다.

남편이 화장실에 간 사이 어머님이 "아침에 우는 것 같더라." 하셨다.

모르는 척하고는 "아... 그런 것 같긴 하더라고요."라며 답했다.


"우리 옛날에 배 탈 때는 머리를 발로 차이면서 일 배웠구먼 쯧쯧......"

"그래도 요즘에 그러면 에효......"

강하게 반박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못내 막내아들의 눈물이 맘에 걸리는지 어머니는 작은 소리로 아쉬움을 표현하셨다.


작은 회사라도 '직장인'이었다면 대출 연장 따위의 일에 벌벌 떨지 않았을까? 싶다가도

어쨌거나 해결책이 있음에 감사하며 그렇게 정신없던 하루가 지나갔다.



급한 불이 꺼졌다고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다.

자칫 금수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 여전히 나는 아껴살아야 하고, 남편과 아이들의 건강을 신경 쓰고 수험 생활을 이어나가야지 다짐해야 했다.


스스로 인생을 책임지는 어른이 된다는 건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아내야 할 만큼 서러운 일인 것 같다.





"오답노트를 만들어. 그리고 하루하루 오답을 줄여나가는 거야."

남편에게 조언이랍시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어차피 욕먹을 거 오늘은 어제보다 덜 먹고, 내일은 오늘보다 덜 먹는 거 그게 쌓이다 보면 기본틀이 완성될 거라고.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트레이닝 과정 없이 실전인 경우가 많아서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이것뿐이라고......


돈이 남지도 않고 상처받는 일 투성이의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이들을 거저 키우고 있음에 감사하자고.


결국에 남는 건 우리 둘 뿐이라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꼬박 채워 오늘을 살아내 보자며 손을 꼭 잡아본다.









작가의 이전글 어부라는 직업이 남편의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