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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채 Oct 19. 2023

어부라는 직업이 남편의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

저는 어부의 아내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일은 나간다는 메시지로 하루를 시작했다. 조업이 있는 날은 새벽 1시쯤에 일이 시작되고 날씨가 좋지 않거나 기계나 그물 관련 작업이 많을 때는 새벽 5시경에 일을 시작한다. 특히나 여름철의 경우에는 금어기가 있기도 하고 해수온도가 상승하는 탓에 조업을 나가봐야 잡히는 고기도 적어 대부분 일을 쉰다. 그렇게 일을 쉴 때는 육상에서 하는 작업들에 박차를 가하는 데 더운 날씨 때문 에라도 새벽 일찍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어부들은 자연스레 미라클모닝을 하며 뜨는 해를 본다.


도시에만 있다가 어촌으로 들어간 남편은 첨에는 심심함을 못 견뎌 피곤함을 무릅쓰고라도 집에 오곤 했는데, 이번 겨울부터는 새로 시작해야 하는 작업들이 많아서 시골에서 지내고 있다.

멀끔히 차려입고 왁스를 바른 모습 대신 슬리퍼와 운동복 그리고 덥수룩한 머리를 한 그을린 얼굴의 모습을 마주할 때면 ‘정말 뱃사람 다 됐네.’싶다.



어제는 마을에 있는 은행지점에 볼 일이 있어 갔더랬다. 뱃사람 복장 그대로 허름한 모습으로 갔었다보다. 은행에 들어섰는데 왠 걸, 예전 동료였던 후배가 그곳에 직원으로 들어와 있더란다.

’하필 복장까지 그래서… 좀 그렇더라.‘

라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원래 같았으면 그게 무슨 대수냐고 직업에 귀천이 어딨 냐고 꼰대 아닌 척 잔소리 같은 말들을 늘어놓았겠지만 어제는 괜히 마음이 짠했다.


‘잘 생겼으니까 갠춘해 ‘

라며 농담조로 답했더니 그가 웃는 이모티콘을 보낸다.




아니, 우리 조상님들은 신분제 폐지를 위해 그렇게 노력하셨는데 왜 우린 그렇게 나의 신분을 포장하고 아닌 척하고 다른 것들로라도 증명하고 살고 있는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어부라는 것보다 대기업 소속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어떤 모습이라도 상관없겠지만 사실 후자였다면 더 좋았을지도……

그런 생각을 안 해봤다면 거짓말이겠지.


아직 우리는 직업이 나를 대변하는 세상에 여전히 살고 있는 것 같긴 하다. 거칠고 힘든 일보다는 깔끔하고 편한 일을 모두가 원하겠지만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남편이 처음 바다에 나가던 날 그랬었다.

이 생선들이 사람들의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일하는 것. 그렇게 타인의 건강과 행복을 돕는 일을 하는 건 그만큼 가치가 있는 거라고. 그래서 그 행복을 많은 이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기에 부자가 될 수 있는 거라고. 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그때 남편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물고기야, 더 좋은 곳으로 가렴. 그리고 고맙다.”라고 기도했다고……



모두의 행복을 비는 직업. 그가 계속 이 일을 해내는 힘의 원천은 이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그는 오늘도 흔들리는 파도 속에서도 계속 항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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