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 아내의 은밀한 취미
발레에 관해서는 다양한 오해들이 난무한다. 유연한 사람만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첫 번째이고, 두 번째로는 마른 사람들이 하는 운동이라는 오해가 있다. 발레를 처음 시작한 건 8년 전 둘째를 낳고 마음 깊은 숨겨두었던 발레에 대한 열망을 행동으로 옮겼던 사건과 함께 시작되었다.
음악에 몸을 맡기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눈물을 끓어 넘치는 기분을 자주 맛보던 나는 발레 앞에서도 그렇게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걸 꼭 해야겠다 마음먹었던 것이다.
다시 태어나면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두 아이를 낳은 몸을 발레 학원으로 이끈 것이다.
그냥 예쁘게 추는 춤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모든 저항과 맞서야 하는 것이 발레였고, 나름 근력이나 힘이 좋은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발레는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들을 활성화시킬 수 있어야 하고, 온몸 구석구석의 근신경을 깨울 수 있어야 했다.
희한하게도 시기가 맞아떨어진 건지, 급작스레 보디빌딩 대회를 준비하고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공부하게 되어 발레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삶이 진행되었지만 그게 지금에 와서야 나에게 꼭 필요했던 부분이라는 걸 느낀다. 그때 이를 악물고 운동하고 공부했던 걸 지금 잘 써먹고 있으니 말이다.
구석구석 근신경을 깨우고 근육을 사용해 보고 체화시켰던 노력은 지금 발레수업에서 선생님이 주시는 코멘트를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주었던 것이다.
발레는 신체를 최대한 아름다운 모양으로 활성화시켜 추는 춤이다.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몸이 많이 틀어져있는지는 클래스에서 절실히 깨닫게 된다.
허리 건강이라면 최고라고 자부했던 나는 두 번의 연이은 출산으로 인해 바닥에 'ㄴ'자로 앉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허리가 망가져있었고, 그렇게 정형외과 단골이 되었었다.
꾸준히 발레를 몇 년 이어오면서 속근육을 단련하고 나니 어찌 된 게 발레를 빠지면 허리가 아프고 발레를 다녀오면 허리가 너무 편안한 것이다.
허리가 아프면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기에 발레가 좋아서인 이유도 있지만, 건강을 위해서라도 꾸준히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발레는 팔다리를 최대한 길게 쓰고 목도 쭉 뽑아 길게 사용하며 코어근육들은 단단하게 잡아 중심을 잡거나 발끝으로 서는 일들에 주력한다. 하늘 가까이에서 추는 춤이다 보니 공중으로 몸을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는 근육들을 길러내야 한다. 그래서 골반, 배, 엉덩이를 바짝 당겨 올리는 힘이 필요하다.
그저 흐느적거리는 걸로만 보였던 팔은 등, 어깨, 겨드랑이에서부터 쭉 뻗어 나와 단단하고 부드럽게 들어 올리는 힘을 사용한다. 다리는 유연하되 엉덩이 근육을 사용하여 다리가 흔들림 없이 발레 동작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응력을 가지고 움직인다.
발레는 멈추는 법이 없다. 손 끝과 발 끝은 계속 밀어내고 등, 골반, 배, 엉덩이도 계속 하늘을 향해 끌어올리는 진행 상태여야 한다. 멈추는 순간 동작은 경직되고 딱딱한 춤이 되는 것이다.
각도도 정확해야 하고, 방향도 시선도 모든 동작들이 매뉴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기술부터 연마해야 하는 특성이 이 예술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싶을 때도 있지만, 그렇게 더디게 성장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걸 보면 역시 예술은 그 안에 묘한 매력이 있다는 게 핵심인 듯하다.
마음먹은 대로 되는 날보다 되지 않는 날이 더 많고, 잘 된다 싶으면 또 다른 날은 무너지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발레는 인생을 참 많이도 닮아있다 느껴진다.
120퍼센트를 해야 겨우 80퍼센트에 다다를까 말까 하는 것처럼 맘처럼 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발레는 매일의 성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아도 나를 살아있게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허리가 꼿꼿한 할머니, 뒷모습이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 마음.
그걸 발레로 이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