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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자꾹 Oct 09. 2024

정말 괜찮은 걸까?


딸아이가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을 맞을 무렵 영어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니, 이젠 학원에 다녀야 한다며 엄마가 보낸 거다. 골프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par네 birdie니 하는 단계가 있던 학원이다. 아이가 영어 공부 좀 한다고 생각하면, 엄마들이 어깨를 으쓱하며 보내던 학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 엄마는 줏대도 없고 철이 없었다. 시류에 편승하면서도, 자신은 동네 엄마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한마디로 재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딸아이가 겨울 방학하는 날이었다. 학원에 다닌 지 얼마 안 되니, 다른 아이들과 진도를 맞추려면 보충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학원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엄마는 아이에게 방학식 끝나자마자 곧바로 집에 오라고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말했다. 아이는 마지못해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학교에 갔다.     


딸아이의 방학식이 끝날 시간에 맞춰, 엄마는 아파트 입구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그 학교 학생들이 하나둘, 셋, 넷 무리 지어 지나가도 아이는 오지 않았다. 학원 시간이 되어가는 데도 아이는 연락이 없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휴대폰은 왜 가지고 간 거야?,’ 기다리던 엄마의 마음속은 점점 타들어 가고, 머릿속은 부글부글 끓어 뚜껑이 날아갈 기세였다.     


보충 수업 시작 시각이 지났다. 엄마의 가슴에서 타오르던 불씨는 분노의 불길로 번져가고 있었다. 저 멀리서 아이가 추위에 새빨개진 얼굴로 다가온다.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다가 엄마의 굳은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문다.           

아이를 째려보던 엄마는 다짜고짜 ‘꽥!’ 소리를 지르려다, 주위를 둘러보며 최대한 자제하면서 입술을 깨물고 아이를 힐난하며 물었다.     


“왜 이제 왔어? 오늘 보충 수업 있다고 했어, 안 했어?”    

 

아이는 시무룩해진다.     


“ 잊어버렸어요. 애들하고 놀기로 했는데…….”     


“논. 다. 고?”     


엄마는 화가 나고 또 났다. 약속해 놓고 늦으면 어떡하냐고 아이를 달달 볶았다. 시간이 늦었어도 학원에 가야 한다며 가기 싫다는 아이를 끌고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안에서도 엄마는 내내 굳은 표정으로 아이를 쏘아봤다.     


학원에 도착해서도 아이와 엄마의 실랑이는 끝나지 않았다. 늦어서 창피하다고 들어가기 싫다는 아이와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는 엄마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엄마는 지나가는 누군가라도 들을까 봐, 아이를 화장실로 끌고 갔다. 아이는 거칠게 저항했다. 화장실에 있던 대걸레를 본 순간 엄마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악마를 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아이를 때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바로 그때, 그 엄마는 어릴 적 방구석에서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 속 어린아이는 매를 맞으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는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아주 상냥한 엄마가 될 거야. 절대로 아이를 때리지 않을 거야!’      


엄마는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토록 힘들게 낳아 기른 소중한 아이를 두들겨 패려 했던 자신이 너무 미웠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딸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눈치챈 건지 아니면 포기했는지 강의실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아이에게 돌이키지 못할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해 주어서 고마웠다.   

   

아이는 터덜터덜 강의실로 들어가고, 엄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던 엄마는 저도 모르게 주르륵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봤다. 눈물을 닦고 생각하니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남들 앞에서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면서, 중학교 1학년 짜리 아이와 몸싸움을 벌여서라도 녀석을 학원에 들여보내려 했던 모습이 어이없었고, 누구라도 볼까 봐 아이를 화장실로 끌고 갔던 일은 한심하고 기가 막혔다.   

  

그 누구보다 좋은 엄마가 되어 보겠다고 해놓고서, 이런 가증스러운 민낯을 보는 것이 너무도 싫고 미웠다.      

엄마는 오는 내내 아이가 너무 우울해할까 봐 내내 걱정했다. 아이가 집에 오면 사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곤 집에 돌아와서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만들어 놓고 어떻게 하면 엄마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을까 내내 고민했다.      


‘엄마가 정말 미안했어. 네 얘기도 들어주어야 했는데.'

'화장실에서 소리 질러서 미안해. 진짜 진짜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먼저 손길을 내밀어 미안하다고 말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보충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너무도 평온했다. 오히려 애교가 섞인 웃음을 보이면서, 엄마랑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학원에 가기 싫다고 억지 쓴 것도 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 순간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너무 당황해서 아이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는 그 이후로 여러 번 사과했지만 아이는 자신도 잘못했다는 말로 그냥 넘어가곤 했다. 이 글을 쓰기 얼마 전에 다시 사과하며 아이에게 그날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엄마는 그날을 지금까지 하루도 잊은 적이 없는데 아이는 자신의 기억 속에는 없는 날이라고 했다. 아이는 정말로 괜찮은 걸까?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무의식 저편으로 묻어둔 것일까. 할 수만 있다면 그때 그 아이를 끌어안고 ’진짜로 미안하다 ‘고 사과하며 꼭 끌어안아 주고 싶다.                    



*표지의 도라지꽃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다. 엄마가 딸에게 바치는 사과의 사랑의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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