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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자꾹 Nov 03. 2024

용기가 향기로 다가오던 날

11월이 되었습니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어옵니다. 가을이 떠나갑니다. 붙잡고 싶은데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올가을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간신히 만났기에 더 귀했지요?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알록달록 물드는 단풍잎과 은행잎, 하늘하늘 코스모스도 한몫했지요. 향기로운 국화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시어머니가 국화, 그중에서도 소국을 좋아하세요. 가을이면 아버님이 어머님께 국화 다발이나 화분을 선물해 주시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달에는 시어머니 생신이 있어서 모두 모였습니다. 손주들도 할머니의 국화 사랑을 압니다. 제 아들은 철사가 안에 들어있는 모루라는 몽실몽실한 도구로 국화를 만들어 드렸답니다. 또 형님네 둘째 녀석은 꽃 가게에서 국화를 사들고 왔지 뭡니까? 간단하게 종이로 포장했는데도 깔끔하고 예쁘죠?   

    


30년을 시댁 식구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니 용기 여사도 국화가 좋아졌어요. 국화 향기가 스며들었나 봅니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보면 어서 빨리 소국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봄에 프리지어를 사는 것처럼, 가을에는 소국을 사야 진짜 가을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창밖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 있고 집안에 국화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용기 여사는 오늘 집을 나섰습니다. 국화꽃을 사러 말이죠. 용기 여사네 동네는 꽃 예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용기 여사가 원하는 대로 꽃을 파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꽃다발도 예술이라며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중에서 단 한 곳만 용기 여사의 말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곳으로 갑니다. 택배 상자에 들어있는 구멍이 퐁퐁 뚫린 종이 포장지를 들고서 말이죠.    


                

오늘은 남자 사장님이 계시네요. 남자 사장님은 좀 투박하게 포장해 주셨네요. 전에 여자 사장님은 더 예쁘게 담아주셨는데, 조금 아쉽긴 하네요. 그래도 국화가 예쁘니 좋습니다. 집에 가서 바로 꽃병에 담을 거니까 포장끈도 필요 없습니다.  보실까요?     



종이 포장지는 끌러서 다시 재활용 포장지 두는 곳에 넣고, 꽃만 꽂았습니다. 예술 감각이 별로 없어서 그냥 제 마음대로 꽂아 놓습니다. 노란색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흰색과 연보라색이 잘 어우러져 참 이뻤습니다. 우리 집 소국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고운 자태에 은은한 향기를 자랑합니다.  꽃 내음이 그곳까지 퍼져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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