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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자꾹 Nov 17. 2024

용기는 기쁨을 낳는다!


오늘은 한참 동안 잠들어 있던 새로운 용기를 냈답니다. 용기 여사는 독자님들의 응원에 힘입어 전에 없던 용기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거 아시죠? 이번에도 아주 깊은 곳에 잘 숨어있던 녀석을 끄집어냈습니다.     

     

용기 여사는 10월을 마무리하면서 ‘그림책 심리학회 학술제’에 다녀왔습니다. 학술제는 10시부터 5시 넘는 시간까지 열렸답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용기 여사는 그저 앉아서 강연과 발표를 듣는 청중이었답니다.      


토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부랴부랴 준비해 나가느라 좀 피곤했습니다. 다행히 학술제가 진행되는 회의실 뒤편에 간식과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졸릴 때를 대비해 씹을 수 있는 주전부리를 챙기고 개인 컵에 커피를 담아 왔습니다. 오전 강의는 강사님의 재치로 카페인이 많이 필요치 않더군요.     


이제 점심시간입니다.      


근처 식당에 가서 먹는 줄 알았는데, 도시락을 주신다고 합니다. 이제 용기를 내야 합니다. 도시락을 먹는데 무슨 용기가 필요하겠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용기 여사는 이번에도 큰 용기를 내야 했답니다. 아침에 가방을 챙기면서 개인 컵을 넣고, 잠깐 고민을 했습니다. 도시락을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점심시간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음식점에 가면 혹시나 일회용 수저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지요. 예전에 일본 교토에 갔을 때 나무로 만든 숟가락과 젓가락이 들어 있던 수젓집을 샀던 적이 있습니다. 15~6년 된 것 같습니다. 예쁘고 깔끔하게 만들면 수젓집도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걸 그때 배웠지요. 그냥 면으로 된 천을 간단하게 재봉틀로 박고 고리를 달아 만들었는데 신기하고 좋은 아이디어란 생각에 샀습니다. 눈썰미 좋은 분들은 쉽게 만드실 수 있을 겁니다.    


 

가족들이랑 나들이 갈 때 쓰곤 했답니다. 아이들 소풍 때 김밥 싸줄 때도 숟가락이나 포크 또는 젓가락을 넣어 주면 아이들도 좋아했답니다. 나무 수저는 이미 다 닳아서 없어진 지 오래지만 면으로 만들어진 수젓집은 지금도 싱크대 서랍에 들어있답니다. 아이들이 크고 나서 쓸 일이 많진 않아서 서랍에 들어있을 때가 더 많긴 하지만요.     


부엌 싱크대 서랍에 잠들어 있던 수젓집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살포시 담아 가방에 넣었답니다. 그걸 쓰게 되면 기분 좋을 테고, 쓸 일이 없으면 도로 가져오면 되니까요. 도시락을 준다니, 준비해 간 수저가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참가자들과 나란히 줄 서서 기다리니, 한 분이 도시락을 주고 또 다른 분이 음료수와 나무젓가락을 챙겨 주고 있었습니다. 용기 여사는 다시 용기를 끌어올려 손짓으로 거절하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젓가락을 가져 왔습니다.”  

   

도시락을 나눠주던 사람이 잠깐 멈칫하다가, 알았다는 듯 웃고는 제게 도시락과 음료수만 건네주었습니다. 기분이 엄청 좋았답니다. 예전엔 주변 사람 눈치 보느라 수저를 가져갔는데도 말하지 못하고 그냥 남들처럼 일회용 수저를 사용하곤 했거든요. 여러분들의 응원으로 용기 여사는 점점 더 당당해집니다. 이젠 주변 눈치도 덜 보고, 신나게 용기를 내고 있지 뭡니까.     


도시락을 싹싹 다 비웠습니다. 평소 먹는 양보다 훨씬 많았지만, 공부할 때는 에너지 소비량이 많으니까, 음식물 쓰레기도 줄일 겸 꼭꼭 씹어서 잘 먹었습니다. 다 먹은 뒤에는 빈 도시락을 잘 포개 놓았습니다. 재활용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 쉽게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소재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소재들이 하루빨리 개발되기를 바랍니다.      

    



그다음 날인 일요일엔 성당에 갔습니다. 본당 생일이라고 국수 잔치를 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나가보니 성당 마당에 차려진 식탁에서 사람들이 국수를 맛나게 먹고 있었습니다. 용기 여사와 두 남자는 한참 기다려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신부님이 직접 국수를 날라다 주셨습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세 사람이 안쓰러우셨던 모양입니다. 앞서 드시고 가신 분들이 남긴 반찬이 있길래 아까워서 반찬을 더 가져오지 않았지요.      


옆에 나무젓가락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용기 여사는 뿌듯한 웃음을 지으며 가방에서 젓가락 세 벌이 담긴 수젓집을 꺼냈습니다. 이번에 가져간 수젓집은 제가 집에 있던 천을 간단하게 직선으로 박고 단추를 끼워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물통과 빈 텀블러도 꺼냈습니다. 맥주나 음료수가 준비되어 있다고 해서 가져왔죠.  

 

   

탄산음료를 가지러 간 아들은 국수가 다 불어 버린 뒤에야 돌아왔습니다. 음료수가 모자라 2층 창고에 가지러 갔다고 합니다. 한 상자 가져와서 다른 사람도 마실 수 있게 준비해 놓았다고 합니다. 대견합니다. 지난 9월에 세례 받은 초짜치고는 기특합니다.    

 

남편 말로는, 집에서 가져온 젓가락으로 국수를 먹는 것을 신부님이 유심히 보셨다고 합니다. 주일 미사 때마다 ‘2분 환경 교리’를 힘주어 일러주시는 주임 신부님은 환경에 관심이 많으시거든요. 기분이 더 좋아졌습니다. 집에 가서 젓가락은 설거지하고 수젓집은 빨아야 하지만 그 정도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내 불편함이 세상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저도 고민을 많이 합니다. 때론 용기 여사가 되지 못하고 편리함에 몸을 내맡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부끄러워서 행동을 못 하지는 않습니다. 고민 끝에 시작한 ‘용기 프로젝트’를 여러분이 응원해 주시는 만큼 힘과 용기가 솟아 나기 때문이지요.



다음 주에는 또 어떤 용기가 솟아 나올지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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