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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자꾹 Nov 24. 2024

국물이 끝내줘요!


오늘은 다시 아파트 목요 장으로 갑니다.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지면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죠?. 용기 여사네 목요 장의 또 하나의 명물이 바로 ‘국 집’입니다. 처음에 아파트 장에 국을 파는 집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국을 사다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이 동네 토박이 친구가 하도 맛있다고 자랑을 하길래 한 번 먹어 보기로 했죠. 맛있는데 동네 음식점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다고 하니 속는 셈 치고 한번 가봐야죠.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돈만 덜렁 들고 사장님 앞에 섰습니다. 국이 생각보다 다양해서 놀랐습니다. 사골 우거짓국, 육개장, 선짓국, 뼈해장국….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남편이 좋아하는 육개장을 골랐습니다. 사장님은 준비된 플라스틱 통 가득하게 건더기와 국물을 담아주었습니다. 집에 가져와서 냄비에 붓고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냄새도 폴폴폴 퍼졌습니다. 이틀은 잘 먹을 것 같았습니다. 국물이 끓어오를 때 팽이버섯과 대파를 듬뿍 집어넣었습니다. 이미 다 되어 있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채소를 더하면 풍미가 더해지지 않을까 혼자 상상하면서 넣었는데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국을 처음 먹어 본 식구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국물이 아주 진하고 맛있다고요. 다음부터 차례대로 하나씩 다 먹어 보자고 난리가 났습니다. 용기 여사네 집은 추워지면 날마다 국이 있어야 하는데, 손을 덜게 되었으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ㅎㅎ. 그때부터 한동안 한 주 걸러 한 번씩은 장에 가서 국을 사 왔습니다. 맛있게 잘 먹는 것까진 좋은데 사장님이 국을 담아주는 둥근 플라스틱 통이 자꾸 쌓였습니다. 재활용 분리배출하는 날에 나가보면 비슷하게 생긴 플라스틱 통이 산처럼 쌓여 있더군요. 떡볶이처럼 국물이 들어있는 배달 음식도 그처럼 둥근 통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그만큼 많이 보였던 게지요. 플라스틱 통이 쌓이는 만큼 용기 여사의 고민도 층층이 쌓였습니다.     

 


고민고민하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플라스틱 통을 깨끗이 닦아서 가져가는 겁니다. 그런데 국을 담았던 통은 틈이 많고, 육개장의 고추기름이 그 틈새에 끼어 잘 빠지지 않았습니다. 포기할까 하다가 '네박사'한테 물어보니 수세미로 여러 번 닦아 햇빛이 잘 드는 베란다에 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햇볕을 잘 받으면 김칫물이 든 것도 잘 빠진다고 합니다. 처음 해보는 거라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저 기다릴 밖에요. 다행히 며칠 동안 날이 좋아 햇볕이 잘 들었습니다. 하루하루 고추기름이 빠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며칠 지나니까 플라스틱 용기는 깨끗해졌습니다.      


다음 장날에 바로 그 통을 들고 가서 사장님 앞에서 뚜껑을 열고 담아 달라고 했지요. 사장님은 두말하지 않고 제가 고른 선짓국을 담아주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국을 사러 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용기 여사가 가져간 플라스틱 통에 국을 퍼주던 사장님이 말했습니다.    

 

“깨끗이도 닦아 오셨네요. 그런데 왜 오실 때마다 이렇게 같은 통에 담아 가시는 건가요?”     

용기 여사는 최대한 웃으며 부드럽고 친절하게 들리도록 말했습니다.  

   

“맛있어서 자꾸 먹고 싶은데 플라스틱 통이 자꾸 쌓여서요. 버리는 것도 부담이네요”     


그 말을 들은 사장님이 그 자리에서 명쾌하게 답을 주셨습니다.     


“다음부터는 냄비를 가져오세요. 담아 드릴게요”     


“어머! 그래도 되나요?”  

   

그 말을 듣고 용기 여사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사장님이 앞서서 말씀해 주시니, 순간순간 가라앉는 용기를 끄집어낼 필요 없이 그저 웃으면서 “네!”라고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장에서 국을 살 때면 집에 있는 냄비를 들고나갑니다. 인심 좋은 사장님이 국물을 넉넉하게 담아주십니다. 목요일에는 국이나 찌개 걱정을 덜게 되니 얼마나 좋게요. 더군다나 플라스틱 통이 쌓일 염려도 없고 그 통을 구석구석 닦느라 애쓸 필요도 없고 그저 평소처럼 다 먹고 나면 냄비를 설거지하면 됩니다. 이런저런 걱정을 안 해도 되니 1석 몇조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에는 목요 장뿐 아니라 동네 음식점에도 용기를 들고 진출해야겠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뜨거운 국을 담아 오니 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또 국물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새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요. 남편은 국 냄비 뚜껑에 실리콘 패킹이 있다면 새지 않을 거라고, 그런 제품이 나오면 좋겠다고 합니다. 국 냄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언젠가는 그런 제품이 나오겠죠? 이미 나와 있을까요? 알고 계신 분은 꼭 댓글 달아 주셔요. 꼭이요!!!          



#용기프로젝트 #국은국냄비에 #친환경생활 #플라스틱줄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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