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을이 깊어 가는 날에 시댁 식구들이 모여 수협에 있는 어식당에 가서 회를 먹었습니다. 식구가 많아서 새우구이도 먹었죠. 매운탕에 밥까지 뚝딱했더니, 회는 다 먹었는데 새우가 좀 남았습니다. 어머니가 음식점에 비닐 하나 달라고 해서 담아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때 용기 여사가 나섰습니다.
“잠깐만요!”
하고는 가방에서 평소 집에서 자주 쓰던 반찬 용기를 꺼냈습니다. 새우를 담았더니 용기에 꽉 찼습니다. 집에 와서 다음날 반찬으로 먹으니 머리도 몸통도 고소하고 참 맛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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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지니까 속을 데우겠다고 다들 삼계탕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음식점 골목을 지나던 아들이 갑자기 아귀찜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즉석에서 메뉴가 바뀌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아귀찜도 몸에 좋다 하니 아귀찜 간판이 커다랗게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죠.
통통한 콩나물과 매콤한 양념에 잘 버무려진 아귀찜은 밥도둑이었습니다. 용기 여사는 남편과 오랜만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기분 좋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콩나물이 엄청 많았습니다. 집에서 가져간 스테인리스 용기를 꺼내 깔끔하게 미리 담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아귀찜이 약간 매콤해서 밥을 다 먹고도 조금 남았습니다. 저희 식구들은 소식좌('음식을 적게 먹는다는 뜻의 '소식(小食)'과 어떤 일의 탁월한 능력을 갖춘 장인이란 뜻을 지닌 '좌(座)'가 붙어서 만들어진 신조어로 적게 먹는 사람을 뜻함 국어사전 신조어 | 2022-11-23)라 사실 1인분씩 주문하면 늘 남는답니다. 놓아두고 가기는 아까우니까 콩나물 담아 놓았던 용기를 다시 열어 아귀찜도 넣었죠. 다음날 냉동실에 있던 오징어를 살짝 데쳐서 집에 데려간 아귀찜 콩나물과 버무려 다시 데워 먹었더니 오삼불고기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가족 모임에서는 용기를 꺼내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늘 응원해주는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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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코로나 시국 이후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추어탕집에서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니 할 말이 얼마나 많던지요. 하지만 용기 여사와 친구들은 대한의 아줌마들 아닙니까. 할 말은 다하면서도 먹을 건 또 열심히 먹었지요. 구수하고 찐한 국물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한 뚝배기 가득 담긴 추어탕은 소식좌가 혼자서 다 먹기에는 역시 역부족이었습니다. 밥 한 공기를 다 먹었는데도 국물이 많이 남았습니다. 밥을 다 먹고 잠시 쭈뼛거렸습니다. 가방에 손을 넣다 뺐다 하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결국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가방을 여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어리둥절해했습니다. 용기 여사는 살짝 부끄러웠지만 다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버리면 너무 아깝잖아. 내가 먹던 거니까, 집에 가서 먹을 라고.”
하면서 아이들 ‘겨울 도시락통’으로 쓰던 용기를 꺼냈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라면 부끄러울 게 없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은 핀잔을 주기는커녕,
“생각도 못했다야. 그거 좋은 생각인데!”
하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어찌할 줄 몰라 붉어지던 뺨에 배시시 웃음이 퍼졌습니다
용기 여사 음식점에서 또 한 건 했습니다!.
덧글:
*한겨레 21 보도에 의하면, 2024년 11월 18일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리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한국이 ‘기후 악당’으로 등극했다고 합니다.
화석상 1위 등극한 기후악당 한국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414.html
*12월 1일(오늘)까지 부산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에서 한국 정부의 뜨뜻미지근한 태도가 눈총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https://greenium.kr/news/59622/
용기 여사와 글벗님들이 아무리 용을 쓴들 세계 각국의 정부와 거대 기업들이 나서주지 않으면 우리는 큰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부와 세계 각국이 ‘플라스틱감축’ 회의에서 커다란 진전을 이뤄내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