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용기 여사는 불안과 두려움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커다란 희망을 안고 용기(勇氣) 내어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가방이라는 용기(容器)에는 뜨거운 물이 담긴 보온병과 담요, 손수건, 푹신한 깔개, 응원봉, 초콜릿과 사탕, 양귀자의 소설 『모순』이 들어있었습니다. 지난주에는 남편과 따님도 함께했지만, 이번 주에는 생업 때문에 아들과 용기 여사 둘만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들과 용기 여사는 지하철을 선택했습니다. 7호선 보라매역에서 신림선으로 갈아타러 갔지요. 열차에는 이미 사람들이 넘쳐 차를 하나 보내고 간신히 다음 열차를 탔습니다. 닫힌 문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샛강역까지 가는 동안 사람들은 다 마신 생수병처럼 찌그러져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다가 샛강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마자 모두들 숨을 몰아쉬며 쏟아져 내렸습니다.
샛강역에서 9호선을 갈아탈 수 있지만 더 이상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 광장까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20분만 걸어가면 된다는 아들의 말에 흔쾌히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였죠. 출구로 나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불렀습니다. 평소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왼쪽에 서 있었기에 비켜달라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가방에 달고 있던 고양이 인형 춘배의 ‘빤스’가 벗겨질 것 같다며 걱정하는 여자분들이었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부터 걱정했는데 불상사가 벌어질 뻔했던 거죠. 아들이 춘배에게 ‘빤스’를 잘 입혀 주자 뒤에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용기 여사와 아들도 연방 고맙다고 인사하며 웃었습니다. 결전의 행진을 앞둔 이들에게 휴식 같은 웃음이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골목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의 무리가 합쳐져 인도를 꽉 메웠습니다. 5분 정도 걸었는데 모두 멈춰 섰습니다. 용기 여사는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아 포기했던 화장실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런 상태로 가다가는 몇 시간 동안 꼼짝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10분도 훨씬 넘게 시간을 지체했지만, 꼭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자연스럽게 사람들 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1~2미터 앞으로 가면 몇 분씩 기다려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급한 마음에 구호를 외쳤습니다. 정해진 건 없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약속한 듯 열심히 외쳤습니다. 집에서 나설 때는, 늦어도 두 시에는 광장에 도착하리라 예상했지만, 3시를 훌쩍 넘기고서도 행렬은 광장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멈춰버렸습니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밀려와서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었습니다.
무대는 고사하고 대형 화면도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펴고 앉기 시작했습니다. 용기 여사와 아들도 깔개를 펴고 응원봉과 초를 꺼내 들었습니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산발적으로 탄핵과 체포 등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어렴풋이 노래가 들리면 응원봉과 촛불을 흔들며 따라 부르곤 했습니다.
지난번처럼 인터넷이 먹통이어서 검색할 수도 없고 카톡으로 다른 사람과 상황을 주고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본 무대에서 진행하는 방송은 들리지 않고 외부와 연결도 되지 않으니 모두들 답답해했습니다.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 어느 곳보다 소식이 늦게 전달되니 불안 지수는 높아지고 걱정의 안테나는 어떻게든 주파수를 잡아보려고 멀리멀리 뻗어 나갔습니다.
유일하게 외부와 연결되는 것은 문자메시지였습니다. 누군가 집이나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한 것을 말해주면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과 기대의 추가 오락가락했습니다. 4시가 넘어 탄핵 표결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때부터는 사람들이 함성과 구호를 연달아 외쳤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곳곳에 있으니, 하나로 뭉치기는 어려웠지만 저마다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날은 추웠지만 사람들의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잡아보려고 용기라는 녀석을 끄집어내어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빠르면 다섯 시, 늦어도 다섯 시 반이면 결과가 나온다는 소리에 사람들은 쉬지 않고 목청을 높여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느 순간 누군가,
“와!”
하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가결입니다! 가결이랍니다!”
용기 여사는 너무 기뻐 벌떡 일어나 아들을 부둥켜안았습니다. 누군가는 울고 또 누군가는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기쁨을 노래와 함성으로 표현했습니다.
*덧글
집에 가는 길은 광장으로 향할 때보다 몇 배로 힘들었습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고난의 행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기쁨과 희망을 얻었기에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겨울이 끝나기 전에 우리의 희망이 진정한 기쁨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