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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자꾹 Nov 13. 2024

우리들의 보물찾기


오늘은 화요일.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서 책 모임을 하는 날이다. 오늘 함께 이야기할 책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처음 들어보는 작가 이름에 다들 생소하다며, 추리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인 줄 알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곤 접속사를 거의 쓰지 않고 단문 형태로 쓴 1부에 대해서 가장 많은 생각과 의견을 쏟아 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헝가리 출신이며 2차 대전의 참화를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 겪은 온갖 일들이 작품에 녹아 나왔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 내 아이들도 책과 친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뱃속에 품고 있을 때부터 책을 열심히 읽어주었다. 하지만 네 살 터울의 두 아이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일은 나에게 점점 더 어려운 숙제가 되었다. 아파트 1층 입구에서 우연히 여성문화회관 강의 안내지를 보았다. <자녀를 위한 독서지도>라는 강의 제목이 내 눈길을 끌었다. 그때가 2007년이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고 작은 아이가 2학년이었다.      

나는 석 달 동안 12번의 강의를 듣고도 아쉬움이 남았다. 심화 수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강사님께 전달했다. 강사님은 다른 일정이 있어서, 이제 이곳에서 강의를 더 이상 이어가지 않으신다고 했다. 대신 동아리를 소개해 주셨다. 나처럼 공부에 목마른 사람들이 이미 2005년부터 “보물찾기”라는 모임을 만들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있다고 했다.      


강사님을 통해 대표의 연락처를 받아서 모임에 참석했다. 나를 바라보는 모임 회원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저마다 내 아이를 잘 키워보겠노라는 열기가 한겨울에도 후끈하게 느껴졌다. 그네들의 열기와 열정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함께 간 이들이 없었다면, 다시 나오고 싶을 만큼 그들의 말투와 모임의 분위기는 강했다.    

  

당시에는 회원들이 다수결로 책을 한 권 정해서 읽고, 매주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주체가 되어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모임을 이끌어갔다. 내가 참여해서 처음으로 함께 읽은 책이 이재복의 『우리 동화 바로 읽기』였다. 부제가 ‘어머니가 알아야 할 어린이 문학’이다. 바로 내가 찾던 책이다. 방정환을 만나고 이태준을 만나고 권정생을 만났다. 낯선 북한 동화들도 만났다.     


그 책은 어린 시절 <미운 오리 새끼>와 <인어 공주> 같은 서양 동화밖에 몰랐던 무지한 엄마에게,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동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나는 가뭄에 목마른 사람처럼 책을 열심히 읽고 모여서, 신나게 때론 격렬하게 토론에 참여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어떻게 읽어주는 게 좋은지, 또 다른 좋은 책들은 없는지 찾아보고, 만날 때마다 회원들과 정보를 나눴다.     


동화는 다 비슷하고 쉬운 책인 줄 알았다. 글은 작가가 쓴다. 작가는 사람이다. 글을 쓴 사람이 자란 환경과 그의 생각을 알아야, 작품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아이들에게도 잘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처음에는 모임 선배들이 알아서 챙겨주고, 일러주는 대로 받아먹기만 하면 되었다. 몇 달이 지나자 나도 모임을 이끌어가야 할 순간이 왔다.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모르는 작가와 작품이 너무 많았다. 처음에는 책을 다 사야 하는 줄 알았다.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마음에 꼭 와닿는 작가의 책만 사고 나머지는 도서관에서 찾아보라고 했다. 도서관은 만남의 장소이자 보물창고였다.     


우리는 몇 년 동안 동화를 공부하고 나서 분야를 넓혀 갔다. 역사, 사회, 문화,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책들을 찾아서 함께 읽고 토론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커갔다. 대부분 엄마의 열의에 뒤지지 않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다 하나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모임에 제동이 걸렸다. 아이들은 엄마의 지나친 열정에 반기를 들었다. 엄마가 열심히 책을 읽고 아이를 이끌어 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우리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책 토론 모임이 아니라 눈물 모임이었다. 때론 아이들 성토의 장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엄마니까, 방법을 찾자면서 누군가 구청·도서관에서 주최하는 각종 강연회에 참여하자고 제안했다. 강사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아이보다 엄마인 나 자신을 먼저 돌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엄마인 나를, 누가 어떻게 돌보나 의아했다. 아이들과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살았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깨달았다, ‘내가 기쁘고 즐겁지 않으면 아이들도 남편도 아무도 즐겁지 않다는 것을’.     


아이들 덕에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아이를 위해 책을 고르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찾기로 했다. 처음엔 어색했다. 아이들 눈높이로만 세상을 보다가 내 눈높이를 찾으려니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마다 다른 색깔의 책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 소설을 좋아하고 누군 역사를 좋아했다. 누군 철학을 좋아하고 누군 자기 계발서를 좋아했다. 우리는 그동안 몰랐던 자신을 알아갔다. 다수결로 책의 순서를 정하고 차례로 읽어 나갔다. 처음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책을 읽으면 불편함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원하지 않던 책에서도 무언가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갔다. 그 속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즐거움을 발견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커서 자기 길을 찾아가는 만큼, 우리도 저마다 길을 찾았다. 누구는 학교에서 보조 교사가 되고, 누구는 약국에서 건강 도우미로 일한다. 누구는 체험학습 교사가 되고, 또 누구는 복지시설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친다. 또 누구는 여전히 꿈을 찾고 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일을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 오전에는 시간을 비워 둔다.      


그런 우리에게도 큰 어려움이 닥쳤다.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협이었다. 처음엔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았다. 한 달간 모임을 잠정 중단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답답하고 불안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모임을 하기는 어렵지만 각자 집에서 일정 분량의 책을 읽고 매일 온라인상에서 대화를 나눴다. 댓글만으로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기는 부족했지만, 책을 사랑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전할 수 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자 모임을 다시 시작했다. 회원들은 처음엔 마스크를 쓰고 최대한 조심하며 이야기했다. 바이러스가 위력을 잃어가는 만큼 우리 모임은 활기를 찾았다. 우리는 모임을 시작하던 때로 돌아간 것처럼 열정적으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화요일 오전 10시면 어김없이 모여 사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책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보물을 찾아 나선다. 아이들이 품고 있는 ‘보물’을 찾아주겠다고 시작한 모임이 내년이면 스무 살이 된다. 우리는 열아홉의 부푼 꿈을 안고 스무 살 ‘보물찾기’를 기다린다.     

     


 

#보물찾기 #책사랑 #우리들의보물찾기 #도서관 #책모임 

#부평구립갈산도서관 #화요일오전10시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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