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멋진 아침이었다.
오전에 아들이 수영장 간다길래, 도서관 가려고 같이 집을 나섰다. 수영장 앞에서 빠이빠이 손을 흔들고 신나게 걸어서 동사무소 3층에 마련된 작은 도서관에 갔다. 책을 반납하고 그림책 다섯 권을 빌렸다.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다섯 권이나 만나다니 집에 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신나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높고 째지는 듯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당황해서 문손잡이를 놓아 버렸다. 문은 잠겨버리고 경고음은 계속 내 귀를 찢어댈 듯이 울려댄다. 귀가 아프고 머리가 빙빙 돌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데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들은 수영장에 갔고, 평상시에 늦잠을 자던 따님도 ‘알바’ 간다며 일찍 나간 터라 집엔 아무도 없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스마트폰에서 ‘내 짝꿍’을 찾아 누른다. 이렇게 급할 땐 남편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다행히 벨이 몇 번 울리지 않았는데 전화를 받는다.
“나 집 앞인데, 문 열다가 실수로 현관문이 잠겨버렸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경고음이 계속 나요. 엊그제도 소리 났는데 당신이 열었잖아요. 어떻게 했어요?”
“지난번엔 안쪽에서 무얼 만져서 열었던 것 같은데….”
‘안쪽이라고? 집에 들어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안쪽에서 여냐고.’
남편 말에 더 답답해졌다. 화도 났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번에는 딸한테 전화해서 사정을 말했다.
“엄마, 내가 알아볼게.”
하더니, 카톡으로 이러저러한 방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역시 현관문은 요지부동이다.
숫자들이 쉴 새 없이 어지럽게 돌아가면서 도어락 화면이 깜박거린다. 이것저것 눌러봐도 소용이 없다. 경고음은 쉬지 않고 울려댄다. 생각은 나지 않고 점점 울화통이 치민다.
다시 남편에게 전화했다.
비밀번호를 눌러보란다. 너무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 잊어버렸다고 했더니, 네 자리 숫자를 불러준다. 택도 없다. 숫자에 #을 붙여도, *을 더해도 안 열린다. 돌아버리겠다. 입에서 육두문자가 쏟아지려 한다.
15** 고객센터에 전화하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딸한테 다시 전화했다.
“너 혹시 비밀번호 아니?”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딸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그거 아니에요?”
하면서 숫자를 불러준다.
나는 너무 쉽게 말하는 딸의 모습에 놀랐다. 그것도 모르냐고 힐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현관문 비밀번호도 모르는 엄마라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숫자를 차례로 누르니 경고음이 멈췄다.
다시 똑같이 비번을 누르니 딩동댕~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이런 구세주가 있나! 할렐루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가 살짝 배알이 꼴린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었는데, 나는 경고음을 방방 쏘아대며 꼼짝하지 않던 현관문과 30분 동안이나 실랑이를 벌였던 거다.
얼굴과 등짝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그나마 그 시간 동안 앞집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아 엉망인 내 꼴을 보지 않은 게 다행이다.
남편한테 전화해서 엉터리 번호 가르쳐 줬다고 한바탕 퍼부어대고, 따님 덕에 들어왔다고 자랑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10분 뒤에 수영장 다녀온 아들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들어왔다. 현관문은 조용했다. 나는 기분이 나빴다.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거지?’
문짝에 화를 내고 따져 물어도 대답이 없다.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는 듯이 조용했다. 기계도 기계치를 알아보는 걸까?
자동화라는 신문물이 말썽을 일으켜 요물이 되면 몹시 난감하다. 조금 불편하지만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열쇠와 자물쇠가 그립다.
10월의 어느 서글픈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