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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자꾹 May 13. 2024

『철도원 삼대』황석영

철도원 삼대의 철마는 다시 달릴 수 있을까?


『철도원 삼대』 황석영 장편소설 창비


『철도원 삼대』는 이백만과 이일철, 이지산의 철도 노동자 삼대와 이지산의 아들 공장 노동자 이진오의 이야기다. 이진오는 공장을 외국으로 팔아넘기고 위장 폐업으로 노동자들을 쫓아낸 사측에 맞서기 위해 굴뚝으로 올라간다. 이진오에겐 날마다 식사를 가져다주고 함께 투쟁하는 동료들이 있지만 굴뚝에서의 하루하루는 너무 똑같다. 외롭고 힘겹다.      


이진오는 지금 굴뚝 위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동료들이 어김없이 나타나 매 끼니 밥을 올려주고 바깥소식도 알려줄 때마다 자신을 다잡고 추슬러 보았지만, 그것은 무서운 일상 속에 먹혀 버렸다. 갑자기 내가 지금 무슨 소용없는 짓을 하고 있느냐는 반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왔다  
412쪽   


그 하루하루 중 어느 날 잠결에 어린 시절 살던 샛말집으로 간다. 이진오는 외로움을 잊고 반듯하게 깨어있기 위해 굴뚝 위에서 자기편을 만든다. 다 쓴 페트병에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적어놓고 대화한다. 400여 일 동안 투쟁하면서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아버지가 살아낸 쓰러져가는 조선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과 분단으로 얼룩진 한반도의 현대사를 반추한다.  

    

노동운동과 해방운동을 하다 일제 순사들에게 잡혀 고문당해 세상을 떠난 작은할아버지 이이철. 해방 후에도 일제 강점기만큼이나 암울하고 답답했던 상황에, 잠시 몸을 피한다는 생각으로 북쪽으로 넘어간 할아버지 이일철. 남자들이 떠난 집안을 혼자서 이끌어간 할머니 신금이. 또 자신의 아버지를 찾으러 갔다 한국전쟁 중에 한 다리를 잃은 이진오의 아버지 이지산 그리고 강한 어머니 윤복례. 이들이 함께 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철도 노동자의 삶을 통해, 일본 덕에 신문물이 들어왔다며 여전히 일제를 숭배하는 이들에게 서민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그들이 하루하루 어떻게 버텨냈는지를 보여준다.      


 “철도는 조선 백성들의 피와 눈물로 맹글어진 거다.”
이백만은 손자 이지산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44쪽


 전국에서 철도 부지와 군 주둔지로 집이 헐린 주민은 노숙을 하고, 농토를 잃은 주민은 힘없는 조선 관아에 몰려와서 울기만 할 뿐이었다. 관리들은 이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거나 듣지 않으면 잡아다 곤장을 쳐서 돌려보내곤 했다.  
51쪽    


일제강점기 조선의 해방운동에서 공산주의와 노동운동은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철도원 삼대'는 이런 현실을 일깨워 준다. '철도원 삼대'가 살아간 세월은 이진오 집안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 현대사 그 자체다. 우리가 자꾸만 잊어버린 아주 가까운 역사다. 600쪽이 넘는 길지만 한 권짜리 소설인데, ‘토지’ 같은 대하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100년이 넘는 세월이 책 한 권에 오롯이 담겨있다.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참 고맙다.  

  

할아버지 이일철이 북에서 되돌아오지 못해 가족과 헤어진 것처럼, 남북은 단절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통일이라는 말은 점점 더 퇴색해 간다. 이 세상 어느 외딴섬보다 못한 게 한반도의 현실이다. 남북이 적대관계를 청산해서, 국민들이 왕래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는 기차를 타고 유럽까지도 달려갈 수 있다. 그런 날을 보는 게 꿈이다. 내 생에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때에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 있다. 너무 느려서 답답하긴 했지만.”
“오래 살다보면 알 수 있단다. 서로 겉으로 내색을 안 할 뿐이지 속으론 다들 알구 있거든.”    

564 쪽


이진오는 복직을 꿈꾸며 굴뚝에서 내려오지만, 걱정했던 대로 사측은 겉으로 보여주기에만 충실했다. 사측의 바람대로, 노동자들은 흩어지고 분열되어 간다. 남은 사람들은 다시 힘을 낼 수 있을까?     


“다시 올라가자. 이번엔 내가 올라가겠어.”
막내 차군도 말했다.
“저두요. 김선배, 저두 올라가겠어요.”
거기서 대화가 끊기고 더 이상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612쪽


힘없는 노동자들은 모여야 힘을 만들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더 이상 스스로 목숨을 담보로 내걸지 않고도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남북문제도, 노사문제도 할머니 신금이의 말대로 천천히 한 발자국씩이라도 나아갔으면 좋겠다.  이 작품이 작가가 1989년 방북 때 영등포가 고향이라던 노인에게 들은 그의 삶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흥미로웠고 남북이 그리도 가까웠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 주었다.

  

『철도원 삼대』가 꼭 부커상을 받아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철도원삼대  #황석영 #창비 #근현대사 #함께사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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