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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자꾹 Jun 26. 2024

엄마가 되는 길..

산모도 아기도 위험합니다!



남자들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군대 시절을 꼽는다. 그리곤 지치지도 않고 군대에서 얼차려 받던 이야기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제발 그만하라고 애원하고 짜증을 내도 웬만해선 2절까지는 이어진다.     


그에 버금가는 아니 능가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자들의 출산 후일담이다. 신도 아닌데 열 달 동안 생명을 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이야깃거리다. 게다가 긴장과 고통 속에서, 때로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아이를 온전히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애쓰는 일인데 그보다 더 큰 무용담이 있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나 또한 할 말이 많다.      


난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입덧이 심하지 않았고, 임신 막달까지 큰 이변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조심해서 탈이었다. 잘 모르는 동네에 이사 가자마자 덜컥 임신을 했기에, 겁 많은 나는 남편 없이는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들은 잘못된 정보로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땐 몰랐다, 임산부가 적절히 움직이고 운동을 해야 태아도 산모도 건강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은 적정 수준의 몸무게를 넘어가고 있었다.     

예정일은 9월 중순이었다. 8월 초순까지는 날도 덥고 아기도 위로 올라와 있어 잘 먹지 못했다. 임신 중기까지는 일반인들에 비해 잘 먹지만 8개월쯤 되면, 아이가 소화기까지 치고 올라온다. 그때가 되면 임신 초기 못지않게 잘 먹지도 못하고 몸은 무거워져서 움직이는 것도 현격히 둔해진다. 그러다 완전히 막달에 접어들면 아기는 엄마 아랫배 쪽으로 내려온다. 아기가 천천히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는 거다. 엄마는 아기가 내려오면 소화기는 편해져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이때부터가 관건이다. 그 마지막 짧은 기간에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고 먹고 자기만 하면 태아에게도 산모에게도 좋지 않다. 태아가 갑자기 커지면 순산하기 힘들고, 산모는 콩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몸이 붓고, 임신중독이라는 못된 병에 걸릴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자연분만이 어렵다. 이런 사실을 그때는 까맣게 몰랐다.     


나는 8월 중순에 아기가 내려갔는지 소화가 잘돼서 음식을 먹는 게 편해졌다. 명색이 임산부인데 날이 덥다고 아무거나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양쪽 엄마들이 수박은 과일이니 괜찮다고 하셨다. 임신 기간 내내 커피도 맥주도 제대로 못 마셨는데 수박이라도 원 없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몸무게가 18킬로그램 정도 늘었지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기를 낳기 일주일 전부터 몸이 자꾸 부었다. 어른들은 다 그런 거라고 괜찮다고 하셨다. 나도 남편도 날마다 보니까 몸이 이상해지는 줄 몰랐다. 산전 마지막 검진에서도 의사는 나도 아기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대신 아기가 나오는 산도가 너무 좁다고, 의사가 수술을 권했다. 나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나는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고 싶다고 우겼다. 그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아기는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너무 조용했다. 사흘째가 되니 초조해졌다. 병원 가기 전에 속옷과 수건을 깨끗이 삶아 두어야 했다. 대야에 빨래를 가득 담아 가스레인지로 향했다. 갑자기 무언가 다리 사이로 흘렀다. 기분이 나빴다. ‘설마 내가 오줌을 싼 건 아니겠지?’ 하다가 임신과 출산에 관한 책을 뒤져보았다. 양수가 터진 것 같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병원에 전화를 해보니 바로 오란다. 이제는 진짜 아기를 낳는구나 싶었다. 기쁘기도 하고 겁도 났다. 배가 고플까 봐 빵을 하나 먹고 병원으로 갔다. 남편은 출근도 못하고 나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나는 다른 산모들처럼 산모 대기실에 가서 누웠다. 각종 검사를 하고 관장도 했다. 양수가 터졌으니 조금 있으면 아이가 나오려고 신호를 보낼 거라고 했다. 나는 밤새도록 아기를 기다렸지만, 아무 신호도 오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 있던 산모들이 내는 앓는 소리와 시간마다 와서 내진을 하는 의사들 때문에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저녁 8시쯤 입원을 했는데 아침 8시가 돼서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촉진제를 맞아서 아기가 빨리 나오도록 해야 한단다. 양수가 없는 상황에서 아기를 엄마 뱃속에 오래 두면 안 된다고 했다.   

  

촉진제를 맞고도 뱃속은 평온했다. 나는 산모 대기실에 누워 천장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의사는 내 상태를 보더니, 대기실 밖에서 밤을 꼬박 새운 남편에게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집에 가서 한숨 자고 오라고 했다. 대신 친정 엄마가 오셨다. 남편이 집에 간 지 한 시간이나 되었을까. 갑자기 의사와 간호사들이 내 주변으로 모였다. 나오라는 아기는 나오지 않고 내 혈압이 치솟는다고 했다. 바로 남편이 다시 불려 왔다. 엄마는 결혼한 딸의 대리인이 되지 못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의사는 내게는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다. 나는 대기실 밖에서 의사가 남편과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산모가 임신중독인 것 같아 긴급히 수술을 해야 한다. 잘못하면 산모도 아기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최소한 자궁은 들어내야 할 것 같다’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빨리 동의서에 서명을 하라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너무 무서웠다. 한편으로는 내가 아기를 낳는 데 왜 나한테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지 의아했다. 산모는 결정권이 없는 것인가? 남편에게 모든 권한이 있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미 수술실로 실려 가고 있었다.      


겁이 났지만, 나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수술은 의사가 하지만 내가 온 힘을 다해 노력하면 아기도 살고 나도 깨어날 수 있다고 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수술실에 도착하자마자 의사가 코에 투명 마스크를 씌웠다. 공포를 느낀 순간 바로 정신을 잃었다.     


어느 순간 나는 온 힘을 다해 눈을 뜨려고 애썼다. 내가 노력하면 살아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진짜로 눈을 뜬 건 수술을 마치고도 한참 후였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깨어났냐며 반겨주었다. 그곳은 산모 대기실 옆에 있는 중환자실이었다. 의사 가운을 입은 이가 보였다. 죽음에서 돌아온 내 첫마디는, “선생님, 아기는 무사한가요? 손가락 발가락 다 있나요?”였다. 의사는, 아기는 건강하니 걱정 말라고 했다. 다행히 자궁을 들어내지는 않았지만,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빨리 몸을 추스르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밤새 간호사들이 잘 지켜봐 준 덕인지, 다음 날 오전에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드디어 입원실로 올라갔다. 시댁 식구들이 축하한다고 한꺼번에 찾아왔다. 어머님, 아버님, 형님 부부, 형님네 아기 민지도 같이 면회를 왔다. 어머니는 그 와중에 동인천 시장에서 콩을 한 단 사셨다며, 병실에 누워 있는 며느리 앞에서 콩 껍질을 까셨다. 이제 백일 된 아기를 업은 형님도 어머니를 따라 콩 껍질을 깠다. 병실은 시장 바닥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갑자기 남편이 심각한 어투로 말을 꺼냈다.     


“우린 이제 아이 낳지 않을 거예요!”
“둘째 낳으라고 하지 마세요!”     


솔직히, 너무 놀랐다. 상상도 못했던 말이다. 그리고 고마웠다. 마마보이라고 생각했는데, 감히 어머니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남의 편이 아니라 진짜 내 편이 되었다고 착각했다. 형님도 나도 딸을 하나씩 낳은 상태에서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경고를 날리다니,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응급 수술에 중환자실…. 마누라가 걱정되긴 했나 보다. (딱 일 년 뒤, 남편은 둘째를 갖자고 나를 졸랐다. 역시 ‘남편’은 그 이름값을 한다.) 느긋하게 콩을 까시던 어머니가 바삐 움직이던 손을 잠깐 멈추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시댁 식구들이 돌아가고 나는 아기를 만날 시간만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그날 아기를 만나지 못했다.          



*아기를 만나는 지난한 과정은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생각보다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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