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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자꾹 Jun 19. 2024

호두가 먹고 싶어요!!

       

여자들이 임신이란 걸 하면 평소와 달라진다. 우선, 남편의 작은 실수에도 세상이 무너지듯 날카롭고 까칠하게 반응한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가 식성이다. 초기에는 구토와 구역질이 동반되는 ‘입덧’이라는 증상 때문에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 하지만 입덧이 잦아들면서 대부분 평상시처럼 아니 평상시보다 잘 먹는다. 뱃속의 그 조그만 아기가 원한다며 2인분 심지어 3, 4인분도 거뜬히 해치운다.     


그런데 임신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또 하나의 묘한 현상이 나타난다. 자신이 태어나 지금까지 좋아했던 음식과는 전혀 다른 음식을 원하기도 한다. 아니 갈구한다고 해야 맞다.     


나는 첫째와 둘째를 가졌을 때 똑같이 신 음식이 당겼다. 봄이 되니 새콤한 귤을 찾을 수도 없고 레몬이란 과일은 더더욱 구하기 어려웠다. 90년대 동인천에서는 그랬다. 아니 가난했기에 그런 건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레몬이나 라임을 구할 수 없었기에 음료수로 대체해 보려 했다. 새콤한 맛이 난다는 음료수란 음료수는 다 마셔봤지만, 신맛에 대한 열망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그렇게 새콤함을 애타게 바라던 어느 날이었다.     


시댁에 다니러 갔는데, 호두가 임산부에게 좋다더라며, 아버님이 미국산 호두 살 한 통을 주셨다. 일 년 중 대보름날에만 한쪽씩 먹던 호두를 아무 날도 아닌데, 그것도 한 깡통씩이나 먹으라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감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호두 깡통을 받았다, 결혼 초에는 ‘시’ 자가 들어간 일에는 몸이 절로 반응했기에.     


집에 돌아와서 호두 깡통을 땄을 때 약간 느끼한 냄새가 났다. 그리 역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느끼한 게 제일 싫었는데 의외였다. 하나를 먹어 보니 고소했다.      


“와! 맛있다!”     


남편은 나를 보더니, 자기도 덥석 하나를 집어 먹었다. 표정이 어색했다.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또 하나를 집어 먹었다. 먹고 또 먹었다. 앉은자리에서 3분의 1은 먹었다. 먹어 치웠다고 해야겠다. 며칠 만에 깡통 하나를 다 비워버렸다. 또 먹고 싶었다. 그때부터 신기하게도 신맛은 별로 구미에 당기지 않았다.    

  

우선 동네 가게에 갔다. 그리곤 가게란 가게는 다 뒤져봤다. 없었다. 좀 더 큰 가게를 찾아보기로 했다. 슈퍼마켓이라 간판이 붙은 조금 큰 가게들에도 호두는 보이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봤다. 당시 우리는 차가 없었고 택시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임신부가 무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인천 동구와 중구를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은 마트에 가도 널린 게 외국 물건이고, 코로나19 이후로 손만 까딱하면 어떤 물건이든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때는 흔하디 흔한 대형 마트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발품 팔지 않고 외국 물건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옛날 사람 같다’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아무튼 나는 먹고 싶어 죽겠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굴렀다.  

   

우리가 살던 동인천에서 가장 ‘큰’ 쇼핑몰인 인천백화점에도 가봤다. 식품 판매대를 열 번은 둘러봤지만, 그 비슷한 것도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런 상품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낙담해서 집으로 돌아와 한숨만 쉬었다. 먹고 싶은 걸 못 먹으니, 입맛이 돌지 않아 밥도 잘 먹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시무룩한 얼굴로 밥도 못 먹는 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다음 날 회사에 가서 새로운 정보를 얻어왔다. 동인천역 뒤쪽에 가면 외국 물건을 취급하는 상점이 있다고 했다. 나는 다시 힘을 내서 몸을 일으켰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지 않는가. 이번에는 ‘희망 고문’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집을 나섰다.     


20여 분을 종종거리며 걸어서 동인천역 뒤편 ‘자유 시장’에 도착했다. 작고 허름한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길은 두 사람이 다니기도 힘들 만큼 좁고 어두웠다. 남편은 내 손을 잡고 물어물어 가게를 찾아다녔다. 한참을 헤맨 끝에 미국 물건을 파는 곳을 찾았다. 물건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 행 히 도 내가 찾던 바로 그 깡통이 있었다. 호두가 그려진 그 깡통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남편이 계산하는 동안, 나는 해사한 얼굴로 깡통을 하나 들고 밖으로 나왔다.   

   

정말 맛있었다. 주머니에 가진 돈이 별로 없으니 아껴 먹어야 했다. 참고, 참고 또 참으며 아껴서 먹었지만, 보름 만에 깡통이 다시 비었다. 우리는 또 그 가게에 가서 한 통을 더 사 왔다. 이번에는 좀 더 아껴먹으라는 남편 말이 야속했지만, 돈이 없는 걸 어쩌겠는가. 

    

시댁에서 식사하던 중에, 호두가 너무너무 맛있어서 금방 다 먹어버렸다고 감사 인사를 드렸다. 동네를 다 뒤져서 간신히 구해서 또 먹고 있다고 하니, 아버님이 대뜸 나가자고 하셨다. 그렇게 맛이 있었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느냐고 하셨다. 아버님이 호두를 세 통이나 사 주셨다. 난 너무 좋아 헤벌쭉 웃었다. 그리곤 깡통을 바로 열어 냉큼 집어 먹고는 배시시 웃으며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다 먹으면 또 사주신다고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셨다.    

  

호두 깡통을 얼마나 비웠는지 모르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꿀단지에서 꿀을 꺼내 먹듯이 신나게 집어 먹었다. 막달이 될 때까지 아니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도 호두는 비상식량으로 내 곁에 있었다. 보통 사람이 그렇게 먹었으면 병원에 실려 갔을지도 모른다. 견과류 과다 섭취로 인한 영양 불균형으로 몸이 고장 나도 크게 고장 났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남아있던 호두 알을 하나 집어 먹었다. 이상했다. 별로 맛이 없었다. 고소하기는커녕 씁쓸하고 느끼했다. 몇 달 동안 내가 그걸 왜 그렇게 좋아하고 많이 먹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금쪽이였던 호두 깡통은 순식간에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호두는 내가 좋아한 게 아니라 아이가 원했던 걸로 정리해 버렸다.     


남은 호두는 남편이 술안주로 먹었는지 멸치를 볶을 때 넣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이 호두를 찾아다니던 순간들은 내 삶에서 또 하나의 미스터리로 남아 버렸다. 내 호두알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30년 전의 깡통은 도저히 구할 수 없어서 집에 있는 호두 사진으로 대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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