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이들을 교육여건이 좋은 서울에서 키우고 싶어 하셨다. 야트막하니 누구에게나 친절한 아차산과 서울에서 가장 큰 공원이 있는 이 동네가 4남매를 키우기에 가장 적합하겠다는 것은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우리가 서울살이를 시작했던 집은 시멘트 색의 낡은 담과, 그 안쪽에는 작은 마당이 있는 단층 주택이었다. 좁은 마당엔 수돗가와 화장실이 있었고, 미닫이로 열리는 마루를 중심으로 조그마한 방들이 ㄱ자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샛방살이를 하는 이웃이 있었다는 것과 안방에 작은 다락과 요강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미닫이문을 열고 마루 끄트머리에서 한껏 손을 내밀어 표주박 모양 바가지에 빗물을 받곤 했다. ‘토도독!’ 빗방울이 플라스틱 바가지의 가로로 난 홈에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를 나는 좋아했다.
어린 시절 우리 4남매는 허구한 날 바깥에서 뛰어놀았다. 당시 집 앞 골목에는 상수도 정비를 위한 굵은 수도관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는데, 그 수도관들은 우리의 훌륭한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좁고 복잡한 골목길들은 우리의 상상력과 모험심을 자극했다. 낯선 골목길을 이리저리 누비며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골목 탐험"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놀이다. 아차산에 오르면 우린 한 마리의 다람쥐가 되었다. 걸리적거리는 신발 따위는 벗어던지고, 산꼭대기에서부터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화강암 능선을 따라 겁도 없이 뛰어다녔다. 명절 때 사촌들이 놀러 오면, 어린이대공원으로 우르르 몰려가 “육교 거지 놀이”부터 시작해, 주차장 담 넘기, 동물들 약 올리기 등 온갖 개구 진 놀이들을 해가며 허기가 질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우리 남매들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서울 물 먹고 공부 자알 해서 성공하지는 못 하였으나, 아버지의 바람대로 신나게 뛰어놀다 보니 체력 하나는 뒤지지 않는 강골로 자랐다.
어쩌다 보니 나는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40년을 살았다. 아차산과 어린이대공원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고도제한으로 인해 개발이 어려움)때문에, 이 동네는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 없이 과거의 소박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 흔한 아파트조차 없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아파트 값’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아빠에게 ‘하고 많은 서울의 땅 중에 하필이면 왜 이 동네였느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아빠가 그때 강남에 집을 샀으면 우리도 부자가 되었을 텐데 말이야~ 강남으로 진즉에 이사를 갔었어야지~~” 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이 동네를 떠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4년 전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구해야 했을 때, 9년 전 전세로 살던 집을 나와야 했을 때, 5년 전 신랑이 먼 거리의 회사로 이직했을 때, 1년 전 큰 아이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을 때... 인생을 살다 보니 나에게도 이런저런 이유로 이사를 고민해야 하는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이 동네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내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부모님이 살고 계신 이 소박하고 정겨운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차산 아래에서 자랐고, 내 아이들 또한 아차산 아래에서 키웠다. 어릴 때의 나처럼, 내 아이들도 할머니 집 앞 골목과 아차산, 그리고 어린이대공원에서 신나게 놀면서 자랐다. 숲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눈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상기된 볼과 이마를 따라 달라붙어있는 축축한 머리카락에서는 비에 젖은 흙냄새가 난다.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과거의 내가 살았고, 현재의 내가 살고 있으며, 미래의 내가 살아갈 이곳.
나의 바람은 우리 부모님처럼 이 동네에서 오래오래 사는 것이다. 200년을 산다는 친정집의 감나무가 그 자리에서 고대로 뿌리를 내리고, 여전히 뜨거운 청춘을 살아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 늙은 내가 더 늙은 내 신랑의 손을 잡고, 우리가 함께 살아온 이 동네의 골목골목을 같이 걷고 싶다. 우리가 느릿느릿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이쪽, 그리고 저쪽 어딘가에서 내 엄마와 아빠의 그리운 얼굴이, 내 형제들의 다정한 얼굴이, 귀여운 조카들과 내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하나씩 하나씩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 골목길의 어디 즈음에는, 어린 시절의 내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활짝 웃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