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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존스 Sep 15. 2022

그 많던 딸들은 어디로 갔을까?


 명절 때가 되면 우리 집(친정)은 늘 분주하다. 9남매의 맏아들인 아버지 때문에, 맏며느리가 된 엄마는 결혼 후 지금까지 46년 동안을 '신 씨 집안의 며느리'로 살았다. 명절이 다가오면 대식구의 식사를 챙겨야 하는 엄마의 신경은 부쩍 날카로워진다.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는 칠십 넘은 할머니가 어깨에 배낭을 메고 하루에도 몇 번씩 시장을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명절 준비가 시작된다.

 


  시가의 분위기는 친정과는 완전 딴판이다. 왕래할 친척도 없으며 자식이라곤 우리 신랑 하나뿐이니 음식을 장만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시어머니는 형식적으로나마 명절 분위기를 내려고 했던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았고 그 이후로 우린 연휴 중 딱 하루, 그중에 한 끼를 같이 먹는다. 그것도 서로의 집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말이다.




  추석 전날, 내가 시부모님을 만나 외식을 하고 담소를 나누는 동안 우리 집에서는 집안의 며느리들이 모두 모여 좁디좁은 부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전을 부치고, 튀김을 튀기고, 나물을 무쳤다.


  추석날 당일, 느지막이 일어나 친정에 갔다. 엄마는 나에게 전날에도 오지 않고, 추석 당일 날도 일찌감치 와서 일을 돕지 않았다며 '딸자식 다 소용없다'라고 타박을 한다. 물론 나도 신 씨의 후손이니 차례상을 함께 거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이런 타박을 어쩌다 한번 안 온 딸이 아닌 명절 때마다 누워서 티브이만 보는 장손에게는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아들은 '아들 대신 아들의 부인인 며느리'가 그 자리를 채워주었으므로 괜찮다는 것인가?


 


  사실, 이런 불합리한 명절 문화가 바뀌려면 여자들이 아니라 남자들의 생각과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 여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부장제의 부조리함을 뼛속 깊이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행인 것은 요즘 젊은이들, 남자들의 생각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추석 당일 차례를 지내러 온 사촌 동생들(슬프게도 남동생보다 훨씬 많았던 여동생들은 시가로 차례를 지내러 가고 큰집에 차례 지내러 온 사촌들은 모두 남자들뿐이다.)은 차례가 끝나자마자 밥상머리에  앉아 누군가가 음식을 차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엉덩이도 가쁜하게 부엌을 들락날락거리며 음식을 나르고 부지런히 잔심부름을 해댔다. 그중에는 작년에 결혼을 한 새 신랑도 있었는데 와이프는 친정으로 보내고 혼자 우리 집(큰집)에 차례를 지내려 왔다. 어른들은 며느리가 왜 안 왔는지 궁금해하며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2022년을 살아가는 새 신랑으로서 사촌동생은 참으로 현명한 처신을 한 것이다. 마치 우리 시어머니처럼 말이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은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오래간만에 만나 서로의 정을 나누는 뜻깊은 날이지만, 그날이 가족 중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 하나 희생해서 가족 모두가 즐거울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으로 자발적으로 희생을 자처해 온 우리 어머니들의 세대는 끝났다. 불합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영부영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시댁과 남편'의 눈치를 보며 원하지 않는 희생을 해왔던 우리의 세대도 끝나간다. 1인 가구, 저출산, 비혼 주의가 사회의 주요 키워드가 되어버린 시대.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아이도 모두가 함께 준비하고 함께 누리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명절을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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