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돌봄을 가는 집에 부부가 얼마 전 혼인성사를 받고, '부부수업'이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얼마전 남편과 대판 싸운 뒤라 식탁에 놓인 그 책을 자연스럽게 펼쳐보게 되었다.
그 책의 첫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_결혼생활에서 생기는 수 많은 실망은 기본적으로 한가지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을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성과 함께 있을때 좋은 느낌이 들면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감정 그 이상입니다. 사랑은 결심이지요. 배우자를 사랑하겠다고 결심해 보세요._중략
이 책에 따르자면, 지금 내 결혼생활이 썩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내가 사랑을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인 것일까?
사랑이 감정이라면, 그 감정이 식은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30대에는 불가에서 말하는 '측은지심'이 사랑의 다른 말이라 믿으며 남편을 안쓰럽게 생각하려 애썼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노력도 흐지부지 되었다.
결정적으로 3년전 학원 일을 시작하면서 부터 만사가 귀찮아졌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매일 매일이 시험 전 날인 것처럼 불안했다. 그로 인해 그렇게 좋아하던 자전거조차 타지 못 했다. 남편이 나를 만지는 것도 소름끼치게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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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결심" 해야하는 것이라는 걸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내 사랑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그 불씨가 완전히 꺼지기 전에 매일 매일 나 자신을 다잡으며 남편을 사랑하려고 애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금 간 유리잔에 담긴 물처럼 어느 샌가 내 마음 속은 텅 비어 있었다.
남편의 무심함 덕분에, '하루만 무사히' 라는 마음으로 지내던 내가 교습소를 인수하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남편은 나의 힘듦을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는건지, 쓰레기 분리 수거 때문에 시작 된 말 싸움 끝에 그가 나에게 한 말은
'너가 하는게 뭐가 그렇게 많다고ㅡ'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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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벌이로 생활이 안 되는 남편의 능력을 무시하고, 맞벌이 시키면서 집안일을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 책에 '중략'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배우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해 보세요.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배우자를 위한 일들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결혼 생활이 행복해질수 있습니다.
이 문장의 마지막을 차마 옮기지 못했던 이유는, 그 마지막을 실천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내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결혼생활은 지금처럼 고요하고 잔잔하게, 별다른 문제 없이 지속 될 것이다. 우리 둘 중 누구도 고요한 수면에 돌을 던질 용기는 없으므로....
적당한 무관심과 느슨한 연대로, 가깝지만 먼 사이로 이렇게 살다 늙어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