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생활은 롤러코스터와 같다. 어느 때는 좋아지는 것 같다가도, 어느 때는 한없이 나빠진다. 끝없는 상승과 하강의 반복. '나을 수 있을까' 기대감과 '나을 수 없을 거 같아' 실망감의 반복. 그 속에서 내 마음은 점점 단단해졌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세상은 좋은 날만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쁜 날만 있지도 않단 걸.
늦여름에 남자친구는 잠시 떨어져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간 나의 투병과 로스쿨 학업, 지난 사업의 정리를 맡으며 가시밭길을 단거리 경주로 뛰듯 살아왔던 남자친구였다. 당연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 말이 못내 섭섭했다. "생각 정리는 같이 살면서도 할 수 있잖아." 실은, 아버지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약속을 어기면서 생긴 인간에 대한 불안감이 내 마음속에는 항상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용기 내어 잠시 떨어져 있기로 했다. 앞서 썼듯 분리불안까지 있던 내게는 큰 결심이었다. 나는 열흘 짜리 템플 스테이를 예약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휴대폰은커녕 일체의 전자기기를 들지 않고 갔다. 전남 끝자락에 있는 절이었다.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기억을 되짚어 보니, 남자친구는 내게 기적을 가져다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남자친구조차 힘들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 때도 있었고, 실망스러운 언행을 한 때도 있었다. 그때 내 마음속에 평화가 깃들었다. '뭐든 항상 좋을 수는 없는 법이구나.' 그리고 내가 믿어줄 때마다 그는 다시 내게 더 나은 모습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그럼에도 단단히 믿음을 갖고 중심을 지키고 있으면 그 방향으로 세상이 움직이는구나.'
나의 병(病)도 그랬다. 가끔 병세가 급격히 완화되어 상승의 쾌감을 누릴 때도 있었다. 연애 초기에 갑자기 마음과 몸이 편안해져 죽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내가 떡볶이, 햄버거 등을 먹을 수 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너무 신나 놀이공원에 가서 이것저것을 먹다 결국 배탈이 나 병세는 원상 복귀하고 말았다. 그때 얼마나 속상하고, 우울해했는지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기껏 잡은 상승세를 놓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햄버거나 떡볶이 정도는 먹을 수 있다. 그렇다고 병이 없는 건 아니다. 웬만하면 소화 안 되는 음식 종류는 먹지 않으려 조심하고, 술이나 매운 것 역시 못 먹기 때문이다. 그때 기대하던 만큼 완벽하게 몸이 낫지는 않았지만, 그때 실망한 만큼 완전히 몸이 부서지지도 않았다. '항상 인생은 내가 걱정한 것보다는 잘 풀리고, 내가 기대한 것보다는 조금 못 미치더라고. 그 생각을 하면 안심돼.' 조직개편으로 고생을 하는 와중에도 스스로를 위로하던 회사원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과연 정말 그랬다.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오자 문에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돌아온 걸 환영해! 내가 존경하는 법률가의 책에 다음 쪽지가 있어.' 퀴즈였다.
고 조영래 변호사의 책을 열자, 다음 쪽지가 있었다.
'오늘 밤 10시 반에 대학교 동상 앞에서 보자.'
밤 10시 반에 동상 앞으로 나가자 남자친구는 우리를 위해 맞춘 약혼반지를 건네주며 각자 있는 시간을 통해 결심이 더 단단해졌다고 했다.
반지는 예뻤지만, 내 건 조금 헐렁했고 남자친구 건 조금 꼈다.
그래도 어느 손가락에는 맞았다. 우리네 인생이 늘 그렇듯, 맞춰갈 수 있었다.
나는 왼손 검지에 반지를 꼈고, 남자친구는 반지를 늘리기도 했다.
인생도 이렇듯.
기대도 말고, 실망도 말고.
한때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적이 있었다.
그건 지금 생각해 보니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거나, 혐오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내 흑백논리적인 고질병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과 한없이 편해져 아무 탈 없이 이야기하고 늘 문제없이 놀거나, 아니면 차라리 아예 적대하는 쪽이 마음이 편했다.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불편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을 사랑만 하는 것도, 혐오만 하는 것도 둘 다 지나친 처사란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사람만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를 지나가고 있는 사람을, 한순간만 보고 그 사람의 인생 전부를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오랜 병과 연애 경험이 내게 '시간을 두고 오래 보는 것'의 가치를 가르쳤다.
템플스테이를 통해 명상과 호흡법 공부를 다진 것도 도움이 됐다.
문득 깨달으니 내가 항상 헉헉거리며 짧은 호흡으로 살아오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아버지에게서 살아남고자 매번 기민하고 예민하게 모든 위기에 대처하던 나였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지켜볼 힘이 없었던 것도.
이제 사람들이 '가족인데 그래도' 같은 막말을 해도, 쉽게 실망하지 않고 한 번 더 지켜본다.
한 번 공감해 줬다고 와락 모든 마음을 열고 사랑할 듯 퍼붓던 때처럼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세상에 대해서도, 병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이렇게 너무 기대도 안 하고 실망도 안 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