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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Sep 27. 2023

성악 수업에서 내가 배운 것

"샐리 씨. 아기들을 보면 엄청나게 시끄럽게 울죠? 그리고 샐리 씨가 남자친구에게 화낼 때, 평소와는 달리 엄청 큰 소리로 소리치게 되지 않아요?"


뜨끔했다.


"우리 사는 게 그래요.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하면 아무 문제 없이 누구나 크고 맑은 소리를 낼 수 있어요. 그런데 소리가 작거나 들뜨는 사람들은 잘못된 곳에 힘을 주고 있는 거예요."


뜨개질 모임 중 추천 받은 성악 과외를 갔다. 선생님은 친절하고 설명을 잘해주는 분이셨다. 우선은 기본 발성부터 고쳤다. '라시도레미' 음계 하나하나에 소리를 얹을 때마다, 선생님이 하나씩 고칠 점을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것들이 하도 많아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꼬였다.


"힘을 빼고!"

"음을 하나씩 치려고 하지 말아요."

"성대를 꼬집는 것처럼!"

"광대 위로 발성을 한다는 느낌으로 하세요!"


이렇듯 한 번에 쏟아지는 여러 가지의 전달사항을 지키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인데, 정작 내가 의식이 없을 때는 이 모든 것들을 완벽히 지키고 있다니 신기했다. 우리는 왜 원래의 목소리를 잊어 버렸을까?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이렇게 복잡한 스펙은 처음 보네요' 라고 로스쿨 입시 컨설팅 담당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희한한 스펙의 사람이 되었다. 온갖 곳을 끊임없이 전전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몸에 병을 키우고 있던 셈이다. 그때부터였을까. 목소리도 작아지게 됐다.


"아이으아아 하나요."

"예?"

"아이스아메리카노 하나요!"


이렇게 카페 아르바이트생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머릿속이 항상 지금 할 일, 다음에 할 일, 내일, 다음주, 다음달로 가득했다.

당장 입술 근육에도 힘을 주는 일이 피곤했다. 변명 같지만 정말 그랬다.


"언니는 노래를 왜 그렇게 해?"


어느 새인가, 나는 노래하는 법도 잊고 있었다.




"원래 사람이 하는 대로 고음을 내면 조금도 목이 아프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해볼까요?"


연습을 거듭하고 나온 세 번째 성악 강의 날. 나는 두 눈을 감았다.

두 팔을 자연스럽게 허벅지에 얹고, 온몸을 이완시킨다.

천천히 물 속에 있는 것처럼 온몸의 긴장을 푼다.

폐에서 숨이 뱉어지는 것을 그대로 아무 가공도 가하지 않고 머리 밖으로 뱉어낸다.


"라라라라라"

"잘했어요! 지금 완벽해요!"


해답은 간단했다.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의 주어진 목소리를 그대로 내는 것.

왜냐면 인간은 원래 말하고 노래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나는 삶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겠지'

'가난은 게으름 탓이야'

'가난한 학생들은 일을 잘 못하는 경향이 있어서 근로장학금도 덜 주고 있어요'


수많은 편견 어린 말. 말. 말.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났고 세상에 도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내가 그 편견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노래하듯 자연스럽게 입을 벌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성실한 사람은 성실하게 살고, 게으른 사람은 게으르게 살겠지.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롭게 살고, 바보 같은 사람은 바보 같이 살겠지.


그냥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만 하면 노래가 되듯 삶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미 그 삶 자체가 증명되는 것이지, 우리에게는 구태여 더 무언가를 증명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억지로 성대를 비틀듯, 무리한 삶을 살아왔다.


이제야 나는 노래하듯이 살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노래하듯 살아보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성악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럴 때 인간은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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