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머리서기를 시도했을 때는 나의 첫 번째 요가원, 동네에 있던 센터형 요가원에 다니고 있었다. 원장님 수업이었고, 수련실 구석까지 회원이 가득 찬 날이었다. 선생님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맞춰 열심히 동작을 따라갔다.
“자, 오늘은 챌린지 동작을 한 번 해볼 거예요. 머리서기 아시죠?”
양손으로 뒤통수를 감싼 채로 정수리를 바닥에 대고 물구나무를 서는 머리서기는 산스크리트어(고대 인도어)로 ‘살람바 시르사아사나’라고 하며 ‘아사나(요가 자세)의 왕’이라고 불린다. 처음엔 아사나 중에 왕이라면 게임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대왕 악당 캐릭터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완성하기 제일 어렵다는 뜻인가? 가장 힘들다는 뜻일까? 하지만 머리서기는 의외로 초급자도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할 수 있는 아사나이며, 나 역시 초급자일 때 처음으로 머리서기를 시도했었다. 머리서기가 아사나의 왕인 이유는 그 자세가 주는 효과 때문이라고 한다. 머리와 발끝의 방향을 서 있을 때에서 완전히 거꾸로 세우기 때문에 평소 생활할 때와는 반대 방향으로 혈액이 순환하게 되며, 뇌에 엄청난 혈액이 공급되기도 하고, 전체적인 혈액순환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론적으론 그렇다. 사실 요가 동작에 아주 능숙하지 않다면 머리서기를 할 때쯤에는 자세에 집중하느라 내 몸이 어떤지 느낄 정신이 없다. 나는 특히 겁이 많아서 하체를 상체 위로 들어 몸을 거꾸로 하는 모든 역자세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몸을 거꾸로 들면 균형을 잡기가 당연히 어렵다. 실제로 넘어진 적도 많다. 넘어지는 방법마저 터득해서 이제는 어떻게 안전하게 넘어질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알면서도 넘어지는 건 언제나 기분이 안 좋고 잘못 넘어지면 아프기도 하니까.
초보자가 대부분인 수업이었는데 머리서기를 시도해보라니 조금 놀랐다. 몇몇 사람은 그 말을 듣고 자리에 앉아 쉴 준비를 하기도 했다. 나는 일단 따라가 보기로 했다. 선생님은 단계별로 취해야 할 동작을 알려주셨다. 먼저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맞잡은 양손이 양 팔꿈치와 함께 삼각형을 이루도록 매트 위에 두고 정수리를 그사이에 끼웠다. 그리고 굽혀져 있는 다리를 쭉 펴니 상체가 머리 위에 거꾸로 서면서 정수리에 압력이 느껴졌다. 이제 발을 얼굴 쪽으로 가까이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다가 한발을 바닥에서 떼어 엉덩이 쪽으로 굽혔다. 그다음 다른 한발로 톡 톡 바닥을 밀며 무게중심을 가운데로 옮겨주고, 그 발을 마저 엉덩이 쪽으로 굽히면 일단 균형 잡는 데에는 성공할 것 같았다. 톡, 톡, 두 번 정도 밀었을까? 뒹굴. 눈 떠보니 앞자리 회원분 매트 위에 올라가 있었다. 중심을 잃고 앞구르기 하듯이 정면으로 구른 것이다. (넘어짐의 정석 같은 방식이다.) 머쓱하게 죄송하다 인사하고 내 매트로 돌아왔다.
“잘하셨어요. 그렇게 넘어지시면 돼요. 저도 얼마나 많이 넘어졌는지 몰라요.”
결과물이 좋아야만 칭찬을 받는 사회에서 넘어져도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그다음부터는 틈만 나면 머리서기를 시도했다. 혼자 있을 때 넘어지는 건 칭찬도 못 받고 아프기만 하니 벽을 이용했다. 벽을 바라본 상태에서 바닥에 두 팔과 정수리를 내려두고 머리서기로 올라가면 우선 벽에 기댄 후에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요가원에 다니면서는 벽을 ‘졸업’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머리서기 시간에 벽으로 가려는 나를 수련실 공간 가운데로 불러내곤 하셨다. 겁이 많고 소심한 나는 차마 넘어질 만큼 다리를 뻗지는 못하고 어정쩡한 각도로 버티는 날이 더 많았다. 선생님이 발목을 잡아 몸을 일자로 펴주시면 그제야 여태 내 몸이 일자가 아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꾸준한 수련을 거쳐 지금은 머리서기에서 다양한 변형 자세에 도전할 만큼 안정감을 찾긴 했지만, 역자세는 늘 나에게 도전이다. 균형을 잃고 넘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버리는 순간 동작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포기하게 된다. 오히려 철푸덕 넘어지면서까지 자세를 시도하는 수련생분들을 보며 그 겁 없음에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내가 그들보다 역자세를 잘하는 건 지금뿐일 것이고 앞으로 더 빠르게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는 건 그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그런 나의 감정을 끌어안고 다독여준다. 그게 너야. 이렇게 겁 많고 소심한 너라도 나는 너를 인정해. 너답게 천천히 묵묵하게 나아가자. 수련에 완성은 없다. 그저 정진할 뿐. 그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나는 이 여정을 진심으로 즐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