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에서 제주로 가신 선생님
연희동으로 수련을 다닌 지 일 년 정도 되었을 때 선생님은 요가원을 제주로 이전하셨다. 마냥 평화롭고 안정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선생님의 요가원 운영에도 많은 고충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내색하지 않으시며 지내셨는지. 시간이 조금 지난 뒤, 그때의 선생님을 떠올리면 마음이 시큰했다. 하지만 이전 소식을 들은 당시 내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선생님의 지도와 선생님의 요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고, 이렇게 갑자기 자주 들르기 어려울 만큼 멀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제 어떡하지? 어디서 수련하지? 선생님 같은 분을 찾을 수 있을까? 찾더라도 지금과 같을 수는 없겠지? 요가원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힘들어할 일인지. 솔직히 이런 고민은 그 누구에게 설명해도 공감받지 못할 것 같아 말하지 못했다. 선생님을 만난 후의 내가 그 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나만 알 수 있으니까.
선생님이 제주로 내려가신 뒤 나는 적응의 시간을 가졌다. 혼란스러웠던 마음도 그 과정에서 가라앉았고, 변한 상황도 서서히 받아들였다. 치열한 해시태그 검색 끝에 만난 새로운 선생님은 열정이 넘치고 밝은 에너지를 나눠주시는 분이었다. 새로운 선생님과의 수련도 늘 즐거웠고 신선한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상황도 내 마음도 모두 정리되고 나니 감사함이 찾아왔다. 요가를 수련하며 스스로 위로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선생님에게 너무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사실은 내 몫인 부분까지도. 선생님에게서 잠시 떨어져 있으면서 오히려 스스로 서는 법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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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연결되어 있다면 먼 거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선생님이 제주에서 온라인 클래스를 열어주시는 덕분에 수련도 종종 함께하고 명상 모임도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치 제주도에 놀러 갈 명분이 필요했던 사람처럼 틈만 나면 비행기표를 끊어 내려가곤 했다. 나는 그저 제주가 좋고 제주에서 선생님이 새로 꾸리신 요가원이 좋아서 자주 내려갔을 뿐인데 주변에선 나를 ‘요가 하러 제주도 가는 요가 매니아’로 여겼다. 제주에는 워낙 좋은 호텔과 맛집, 박물관 등 구경할 것들이 많지만 나는 요가원 근처에서만 지냈다. 요가원이 자리 잡은 한경면 저지리는 바닷가에서 차로 15분 정도 들어가면 나오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저지오름으로 가는 입구가 있는 큰길에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화산석으로 쌓은 담장과 귤나무 행렬을 지나면 숲속 오두막처럼 요가원이 나타났다.
서울에서는 못 하고 제주에서만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을 정도로 제주에는 없는 게 없었다. 하지만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다는 점과 북적이는 인파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선생님과 온라인 명상 모임을 하던 어느 날 공원이나 산길을 걸으며 흙을 밟아보자는 숙제를 받았다. 땅의 기운을 느껴보자는 취지였다. 그때야 알게 된 사실은 서울에서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되지 않은 길을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가까운 산에 오르거나 공원을 찾아가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생활 반경에서 온전한 흙길을 밟기가 쉽지 않았다. 도시에서는 흙으로 된 땅은 물론 나무, 물길, 햇빛 모두 일부러 찾아가는 수고 없이는 접하기가 어려웠다. 반면 제주에서는 이 모든 걸 어려움 없이 접할 수 있었다. 제주 시내만 조금 벗어나면 탁 트인 하늘과 바다는 물론 섬 각지에 자리 잡은 오름과 우거진 숲까지 찾아볼 수 있었다. 제주에서 자란 어느 아이는 거리에 활짝 핀 꽃이 신기해 열심히 사진으로 담는 서울 어른들을 보며, “엄마, 서울에는 꽃이 없어?”라고 했단다. 그런 광경이 낯설었을 아이의 환경이 부러웠다. 친구야, 서울에서 그런 건 돈 주고 사야 한단다.
요가 하는 사람들이 왜 제주를 많이 찾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의 경우는 제주로 내려오신 선생님이 계기가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찾아오는 이유는 자연과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요가를 하다 보니 물건이나 음식, 문화, 가치관 전반에 있어 인위적인 것은 비우고 자연에서 비롯된 것을 채우게 된다. 물론 이런 건 제주에 오지 않아도 채울 수 있겠지만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자연을 느끼는 그 감각을 습득하는 일은 중요하다.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나에게 놓인 상황도 그랬다. 의지와 상관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받아들이는 법은 아무리 글로 배우고 영상으로 익혀도 직접 겪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변화한 상황에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받아들이는 그 과정은 요가 수련에서 내 몸의 근육이 단련되는 것처럼 마음의 근육으로 단련되어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