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자연은 어디에서나 아름답거나 혹은 어디서도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 낯선 풍경을 자신이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 어느 외국에 나가서도 따스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한번 찾아갔던 장소에 대해 훗날 아무런 동경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내면이 텅 빈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어린아이들이 노는 좁은 방을 나서거나 사촌 관계만 넘어서도, 다른 낯선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들과 교류하거나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헤르만 헤세 -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한 달 전 제주도에서 찾아갔던 작은 책방에서 구입한 책이다. ‘지상의 아름다움과 삶의 경이로움에 대하여’라는 제목 밑의 표지 글귀에 전혀 공감할 수 없어서 고르게 되었다. 아름다움, 경이로움 그런 단어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닳고 닳아 가루가 되어 버릴 것 같았던 내 영혼은, 그래도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살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
숙소 스태프들의 강추로 La Jacques-Cartier National Park에 갔다. 5년 전에 정상에서 찍었다는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John은 말했다.
캐나다에 여러 개의 내셔널 파크가 있는데 웹사이트를 통해 주차가 포함된 티켓을 구매했다. 반드시 예약을 하라고 명시되어 있었지만 현장 구입도 가능한 것 같았다. 입장을 하고 난 뒤에도 한 시간가량 운전해서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다른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끝도 없이 펼쳐진 웅장한 초록 세상 앞에서 준비없이 파도에 휩쓸리듯 압도당해서 가슴이 뻐근하고 눈물이 날 뻔했다.
구글 맵에서 가리키는 목적지의 빨간 점까지 계속 올라갔는데 앞서 가는 차도, 따라오는 차도 없이 오롯이 나 혼자일 때는 이렇게 계속 올라가는 게 맞나 확신이 없다가도 그래도 길이 있으니까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맵에서 도착했다고 나오는 지점까지 갔지만 산으로 올라갈만한 장소나 지도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15분 전쯤 스쳐 지났던 휴게소에 돌아와 차를 세우고 간단히 밥을 먹은 후 하이킹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도에는 영어 단어 하나 없이 불어만 있어서 John 이 말 한 정상이 어느 길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일단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7.3km 표지판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과 바람소리, 새소리만 들으며 천천히 걷다가 1km 지점까지 왔을 때 소요된 시간을 보니 이 속도로는 왕복 14km를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첩첩산중이라지만 어떻게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인지, 여기로 가면 되는 것인지, 중간에 무슨 일이 생겨도 나를 구해주러 올 수는 없겠구나, 등등 여러 가지 의혹의 무게를 안고 걷다 보니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지나가고 몇 명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일에 치여서 휴직을 선언할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혼자 조용히 있다 오고 싶다고 했는데, 정말 철저하게 혼자가 되고 나니 (전화도 안 터짐)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더라,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불과 한 달 반 전에 나에게 하루하루는 죽음과 같았다.
1시간 정도 경과하니, 사람이 없어도 걱정되지 않았고 이 거대한 자연이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끝에 가면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 자전거는 가지 못하고 사람만 갈 수 있는 등반 코스를 택해 거침없이 휙휙 나아갔다. 2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걸었는데 7km 하이킹 끝에는 다른 안내소가 나왔다. 차로 올라올 때 지나쳤던 곳이었다. 정상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만 왔던 길을 돌아서 주차해 놓은 곳으로 돌아가야 하니 갑자기 맥이 빠졌다.
30분 정도 쉬고 다시 출발. 이제는 가야 할 곳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 걷는 길이 무섭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걸었기 때문에 다리도, 발가락도 아파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기 몸보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가장 감사하는 순간이 땀으로 달라붙은 머릿결을 날려주는 바람이라고 하더니 그 ‘찰나’의 감사를 위해 나는 행군하듯 걸었다.
몸이 가벼울 때는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이 나더니, 몸이 힘드니 오히려 단순해져서 7km 표지판이 나왔을 때는 혼자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주차장에 마지막 남아 있는 차에 올라타 내려가보니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걸었던 길이 차로 불과 20분 남짓 거리였다.
편하게 차를 타고 갔으면 됐을 길을 사람들은 왜 걷고 또 자전거를 타는가. 무거운 보트를 머리에 이고 나와 왜 강을 헤치며 떠다니는가, 이 깊은 산속에 사람들과 자전거가 다닐 수 있도록 깨끗하고 편하기 길을 만들어 놓은 것도 놀라웠지만 우리가 이토록 자연 안에서 쉬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답은 헤르만 헤세의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를 읽으며 찾아보려고 한다. 지상의 아름다움과 삶의 경이로움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