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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Mar 04. 2021

오분 돌아가는 출근길

지나가는 계절과 바람을 느끼는 즐거움에 대하여


걷는 것을 좋아한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갔는데,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8분을 넘어선다면 다음 정류장을 향해 걷는다. 지도 어플에서 최적의 경로를 검색했는데, 지하철 역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가야 하는 시간이 10분이 안 된다면 걷는다. 계획 없는 주말, 언젠가 지도에 콕 찍어둔 장소에 가는 길, 좋아하는 동네나 거리를 지나간다면 기꺼이 걸으며 동네를 둘러본다.

특히, 출퇴근길에 걷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하루를 회사에서 소진하기 전에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출근길의 걷기는 짧아도 꼭 필요하고,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OFF의 나로 돌아가기 위해서 퇴근길의 걷기도 소중하다.

지난해, 서울숲 근처의 회사로 이직을 했다. 뚝섬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약 20분 정도가 걸렸다. 새로운 회사와 동네에 차츰 적응해나가던 어느 날 평소보다 약 5분 정도 일찍 뚝섬역에 도착했고, 회사로 향하다 서울숲으로 살짝 돌아가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에 접어들던 무렵이었다.



(왼쪽부터) 처음 서울숲 출근길 사진을 남겼던 날, ‘오분돌아가는출근길’ 처음 이름 붙인 날, 고양이를 만난 날



그날 이후, 약 10개월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 서울숲으로 살짝 돌아 출근을 하고 있다. 이름하야 ‘오돌출’. ‘오분 돌아가는 출근길’의 줄임말로, 지금으로부터 약 37주 전 별 의미 없이 붙인 이름이다. 때때로 10분이나 20분을 돌아갈 때도 있었지만, 십돌출이나 이돌출보다 오돌출이 입에 착 감기지 않는가.


서울숲을 돌아가는 출근길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게 해 줬다는 거다. 하늘의 표정이나 색깔이 변하는 것처럼 흙과 나무의 색깔도 하루하루 달라졌다.


오분 돌아가는 출근길에 만나는 장면을 찍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하면서, 맑은 날에는 파란 하늘을, 비가 오면 더욱 진해진 자연의 색과 흙내음을, 흐리고 바람 부는 날엔 다소 을씨년스러운 공원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 일찍이 집을 나섰다.


날이 갈수록 짙어져 푸르름으로 가득 찼다가 색색의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계절의 변화는 또 얼마나 담을 것이 많았겠는가. 같은 자리에서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담아보기도 하고, 새로운 풍경을 찍고 싶어 시간 여유가 된다면 평소에는 다니지 않는 길로 돌아 가보기도 하며, 출근길 찰나의 기쁨을 누렸다.




짙었던 여름이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는 모습


혹자는 서울숲이라는 걷기 좋은 공간이 직장 옆에 자리한 것이 나의 걷기의 원동력인가 보다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돌출’과 같은 이름이 없었을 뿐, 돌이켜보면 출근길의 걷기는 꽤 오래된 습관이다. 전 직장이나 전전 직장, 전전전 직장에서도 종종 출퇴근길을 총총거리며 걸어 다녔다. 특히, 충무로역에 위치한 전 직장에 다닐 때는 3호선 구파발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의 중심으로 향하는 약 2년 동안 충무로역에서 하차한 것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10분의 여유가 있다면 을지로3가역에서, 20분의 여유가 있다면 종로3가역에서, 30분의 여유가 있다면 안국역에서 내려서 걸었다.


서울숲처럼 꽃과 나무를 바라보며 걷는 흙길은 아니지만 번화가로만 접했던 길을 조용한 아침에 걷는 기분은 평화롭고, 상쾌했으며, 매력이 넘쳤다. 여러 나만의 루트 중에도 안국역에서 내려 인사동 거리를 걸어 내려가는 출근길을 가장 좋아했다. 어제는 이 골목으로 갔다면 오늘은 저 골목으로 가봐야겠다, 하며 한 블록만큼의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도 좋았다.




계절의 매력



아무 일 없을 때는 아무 일이 없는 대로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걸으면 되고, 때때로 마음이 무겁거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며 머릿속을 정리해볼 수도, 거리에 넘쳐나는 간판들을 의미 없이 읽어가며 생각을 증발시켜버릴 수도 있다.


출근길의 걷기가 가능한 많은 공기와 장면을 담기 위한 것이라면, 퇴근길의 걷기는 무념무상의 시간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출근길만큼 쓸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일상의 패턴은 다르므로 다짜고짜 오돌출을 추천할 수는 없겠지만, 괜찮으시다면, 다가오는 월요일에는 딱 오분만 일찍 집을 나서 평소에 가던 출근길에서 잠깐만 옆길로 새어보면 어떨까. 이것이 힘드시다면, 출근길에 잠깐 고개를 들어 한번만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뱉어보면 어떨까. 하늘을 보는 시간을 만들어둔다면, 내일은 조금 걷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조금 걷고 나면, 당신만의 출근길을 생각하며 아침에 눈이 잘 떠질지도 모른다. 성취감말하려 한다기보다는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지나가는 계절과 바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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