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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Apr 21. 2021

도가니탕과 무릎 건강의 상관 관계

내가 사랑한 하산 음식



어느 순간부터 주로 ‘멋지다. 개운하다. 즐겁다’ 같은 형용사를 다시금 느끼고 싶어 산을 찾게 된다. 그런데 그러나, 이 그럴듯한 형용사들만큼이나 산을 찾게 하는 명사 친구들도 있다. 그 이름도 찬란한 ‘파전, 막걸리, 도토리묵, 두부’ 같은 먹거리 명사.





산악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어린 시절 등산을 정말로 싫어했는데 유일하게 약간은 솔깃해하며 따라갔던 산이 있다. 그 산은 거제의 ‘노자산’이었고, 내가 그 산을 좋아했던 이유는 산에서 내려오면 ‘노자산 묵밥집’으로 가 맛있는 묵밥과 메밀전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등산을 싫어하던 통통한 아이가 어째서 매 주말 산을 찾는 사람이 되었는가’하는 이야기는 다음에 듣기로 하고, 오늘은 먹거리 명사에 집중해보자.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산에 오른다. 도토리묵이나 두부를 썰듯 딱 잘라낼 수는 없겠지만, 대략 절반은 뒷산에 가고, 나머지 절반은 근교의 산으로 향한다. 주말 오전,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등산을 하게 된다면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나 고민거리에 대해 털어놓게 된다. 하지만 어느새 진지한 대화를 멈추고 더욱 진지해지는 타이밍이 있다. 이 질문을 할 때가 된 것이다.



 “내려가서 뭐 먹지?”



그렇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니겠나. 특별히 먹을 것을 염두에 두고 출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산에 오르다 보면 먹고 싶은 음식이 그때그때 떠오른다. 불현듯 “아, 감자전 먹고 싶다!” 하고 외치게 될 때도 있고, “오늘은 막국수에 만두 어때?” 하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할 때도 있다.


사실 꽤 고된 운동인 등산 후 먹는 음식은 늘 꿀맛이다. 너무 배가 고플 때는 그냥 눈에 들어오는 아무 식당으로 돌진하기도 하고, 가끔 지방으로 원정 산행을 하러 가면 이런저런 로컬 맛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 수많은 표본 중 한 곳도 맛없는 집이 없었다. 심지어 거의 99.9%의 확률로, “아, 이 집 맛집이네~”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문을 나선다. 그 모든 가게가 실제로 ‘기가 맥힌’ 맛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나의 위장이 한없이 너그러워진 탓일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산 음식으로 특별히 선호하는 음식이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클리셰가 되어버린 ‘파전, 막걸리, 도토리묵’도 물론 좋지만, 나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는 조금은 장엄한 목소리로 “도가니탕”이라고 말할 것이다.



부모님과 등산 후 먹었던 도가니탕



나에게 도가니탕은 그저 결혼식장 뷔페에 가면 송송 썬 대파를 가득 넣고 한 국자 먹게 되는 정도의 음식이었다. 그런데, 그 묵직한 국물이 몸 곳곳에 퍼져 떨어진 기력을 북돋아 주는 경험을 한 후로 하산 후 또는 등산을 다녀온 다음 날 자주 떠오르고, 종종 권하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작년 초에 호기롭게 도전했던 ‘광청종주*’ 이후 10km 이상 걸으면 무릎에 조금씩 무리가 온다. 테이핑 하면 조금 낫긴 하지만 나의 소중한 무릎에 혹시 사용기한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이 앞설 때가 많다.

*광청종주 : 수원의 광교산에서 출발해 의왕을 거쳐 서초구의 청계산까지 이르는 코스로, 약 12개의 정상을 지나며 총 24.5km를 걷는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자발적 종주 코스.




아마 그때 이후로 도가니탕을 더욱 찾게 되었을 것이다. 어떤 음식점에 가서 먹어야 하는지도 몰랐던 음식이었는데, 이제는 회사 점심시간에도 곰탕 먹으러 가자고 동료들을 속인(?) 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도가니탕을 주문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상황과 때에 따라 다양한 소울푸드를 가지고 있으나 국물류는 취급하지 않았는데, ‘기력이 쇠할 때’ 폴더를 만들어 ‘도가니탕’을 등재해두기로 했다. 도가니탕과 함께라면 꽤 오랜 시간 행복하게 등산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여 짚고 넘어가자면 도가니탕과 무릎 건강의 관계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한번 검색해보았다가 "무릎 아플 땐 도가니탕 먹어라? 살찌면 관절염 더 심해져요*"

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고 뼈만 강하게 얻어맞았다.

*박정렬, 「무릎 아플 땐 도가니탕 먹어라? 살찌면 관절염 더 심해져요」, 『중앙일보헬스미디어』, 2020년 3월 30일, https://jhealthmedia.joins.com/article/article_view.asp?pno=21606



그 효능이 무릎까지 가 닿지는 않더라도 내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효과는 확실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을 것이다.


주말에는 관악산 육봉능선과 팔봉능선을 타고서 오랜만에 도가니탕을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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