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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Jun 07. 2021

친애하는 구파발에게

06 구파발 오피스텔 이야기

약속 없는 일요일 아침, 반쯤 눈을 뜨고 커튼 너머의 밝기로 시간을 가늠해본다. ‘으아아’ 괴성과 함께 기지개를 켜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볼까, 생각하려다 미뤄둔다. 손을 더듬어 머리맡의 폰을 찾아든다. 블루라이트의 눈부심과 싸워가며 인스타그램 피드를 확인하고, 뉴스를 훑어본다. 영화관 앱을 열고 요즘은 어떤 영화를 하나 살펴본다.


‘오, 9시 50분 조조가 있군.’


보고 싶었던 영화는 아니었지만, 뭐 크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적당한 자리로 예매를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씻는다. 영화 시작 10분 전, 편안한 복장으로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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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동 5.5평 원룸의 계약이 한차례 갱신되고 다시 만료될 무렵, 나는 다섯 번째 이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창을 열면 햇살 대신 담배 연기가 쏟아져 들어와 속 시원히 창문 한 번 열지 못했던, 그 자그마한 집에서 떠나고 싶었다. 인턴에서 계약직, 계약직에서 정규직이 되었으니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을 꿈꿀 여력이 생겼다. 다음 집은 조금 더 넓고, 창문이 커다랗기를 바랐다. 그리고, 월세에서 탈출해 전세방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은행과 함께.


부동산을 찾아 원룸을 전전해 보니, 꽤 넓은 집이라 해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창이었다. 대부분은 창살이나 가림막이 떡하니 자리했고, 제아무리 크다 해도 내 어깨 높이에서 시작하는 창은 답답한 느낌을 줬다.


그래서, 커다란 창문 하면 떠오르는 오피스텔을 알아보기로 했다. 딱히 아는 것이 없으니 직방을 열어 오피스텔이 많은 동네를 찾아 서성이다가, 문득 낯선 동네의 이름이 떠올랐다.


“구파발! D가 거기서 산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때 우리 스타필드 갈 때 구파발에서 버스 갈아탔잖아. 그 동네 깔끔하고 오피스텔이 많았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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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파발역 3번 출구


2년간의 구파발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동작구와 관악구를 오가다 낯설고 신기한 동네에 순간이동하듯 폴짝! 이사와 살기 시작한 것이다. 구파발은 일산에 맞닿은 서울 시계(市界)고, 그래서 안 좋은 점도 있었지만 좋은 점이 더 많았다.


먼저, 지하철 구파발역은 '시발역(始發驛)'이다. (입을 최대한 작게 벌리고 공기 80 소리 20으로 발음할 것을 권한다) 이는 특히 출퇴근 지하철에 한껏 납작해지는 지인들이 부러워한 장점이었다. 많아야 한두 대의 열차를 보내고 나면, 잠에서 깨듯 깜빡깜빡 형광등이 켜지며 들어오는 텅 빈 열차를 타고 여유롭게 출근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자리가 있어도 도로록 말리듯 문 바로 옆자리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 다소 붐비는 순간이 오더라도 책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구파발과 충무로를 오가는 3호선에서 많은 책을 읽었고, 출퇴근 독서 근육을 단련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구파발은 아무것도 없던 동네였다. 구파발에 산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십중이삼(十中二三) 돌아오는 말이 있었다.


“와, 거기 옛날에 진짜 아무것도 없었는데”


열에 두세 명은, 주로 ‘만취해서 구파발행 3호선에 올랐는데, 종점에서 행인이 깨웠고, 택시를 타러 출구 밖으로 나갔는데, 그곳은 정말이지 허허벌판이었다’ 하는 이야기를 무용담을 늘어놓듯 꺼내놓았고, 덕분에 간접적으로 내가 사는 동네가 정말 아무것도 없었나 보다,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어찌 장점이냐면, 구파발은 새롭게 만들어진 동네라 서로의 일상에 무관심한 도시의 모습도, 사계절 언제나 열려있는 흙내음 가득한 자연도 있었다는 거다.


마지막으로, 구파발은 1인 생활자가 자리 잡기 좋은 곳이었다. 허허벌판에 생겨난 동네는, 파고들수록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가족 단위의 생활자가 많았으나, 역 근처에는 또래의 자취생이 많았다. 그래서 그간 쉽게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일상으로 만들어갈 수 있었다. 1인 손님을 격하게 편애하는 맥줏집 ‘노비어노라이프’가 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패드를 겨드랑이에 끼고 맥주를 마시러 갈 수 있었고, 진관천을 따라 산책(드물게 러닝)을 즐길 수 있었다.


사랑하는 노비노라



그뿐인가. 역에 커다란 몰이 있으니, 헬스장에서 신나게 운동을 해놓고는 집에 가는 길 롯데마트에 들러 마감 세일로 가격표가 두세 겹 붙은 연어 초밥과 맥주 한 캔을 사 먹기도 했으며, ‘우울한데’ 싶으면 교보문고로 올라가 한국소설 코너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도 있었고, 이야기의 맨 처음 소개한 것처럼, 주말 아침, 오 분 거리의 영화관에 가기 위해 늦잠을 포기하는 새로운 종류의 달콤함도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취미가 등산인데, 북한산이 지척이라는 이야기는 굳이 길게 하지 않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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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 구파발을 떠나 서울에서의 일곱 번째 보금자리로 이사했다. 변화가 필요해 도전했다가 갑작스럽게 이직을 하게 되었고, 길어진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자 조금은 무리하여 이사를 진행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구파발을 종종 그리워하지만, 지금의 동네와 집도 사랑하며 지낸다. 구파발에서 생활하며 ‘아, 서울이 내 삶의 터가 되었구나.’하고 느꼈기 때문이다. 서울살이가 게임이라면, 구파발 생활은 그간 쌓아온 경험치들로 이방인에서 생활자로 레벨 업을 하는 시기였던 것 같다.


이 글은 구파발에서 이사를 떠나던 날, 고작 2년을 산 동네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애틋함을 느끼는 것이 너무 우스워 끄적거렸던 글에서 출발했다. 아무래도 괜찮다고는 하지만 나 좀 일방적으로 구파발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


"구파발아, 조만간 북한산 갈 때 만나. 그때까지 너무 많이 변하지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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