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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Sep 02. 2021

일상을 일상으로 만드는 것들

2021년 8월 26일의 일기

요즘은 여유가 없다.

엊그저께 퇴근길에 '싸움의 고수'에 들러 7800원짜리 보쌈 도시락을 포장해서 저녁으로 호로록 먹고서는 8시부터 누워 자 놓고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그러니까, 마음의 여유가 없다.

업무적으로는, 헤드가 바뀐 덕에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일이 폭탄처럼 날아오는 상황인 데다, 개인적으로는 중대사를 치르기 위한 여러 작은 이벤트들이 뒤따르고 있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카페인 가득한 커피를 들이켜고, 당이 떨어질 때면 손을 떨며 간식 창고로 향하는 모습이 거울에 비치는 것이 웃프다.


여유가 없는데 무슨 글을 쓰고 앉아있나 물으신다면, 마음의 여유는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찾을 수 있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어차피 피곤해서 누워 잘 거라면,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글을 써보는 거다. 하품을 하고 마른세수를 일삼으며 몇 자 끄적여보는 거다. 그러면 그제야 알 수 있다. 아, 내가 피곤해서 잠들기 급급했던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기울일 여유가 없는 내가 싫어서 그냥 눈을 일찍 감아버린 거구나.



-

'루틴'이라거나 '리추얼' 같은 말이 사람들 사이를 오르내린다. 일상의 행복을 위한 크고 작은 의식을 심어두는 거다. 두 단어의 차이가 무엇이냐, 찾아보았으나 애매하다. 루틴은 정말 일상적 행위인 것 같고, 리추얼은 의식적으로 심어두는 나만의 루틴이라 정의하면 되려나. 근데 루틴을 루틴이라고 인식한 순간 리추얼이 되는 거 아닌가. 암튼, 루틴은 얼마 전에 유행하던 말, 리추얼은 최근에 유행하는 말 정도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나의 일상을 지켜주던 루틴은 무엇일까. 일상을 일상이라고 느끼기 위해서, 내가 필요로 한 시간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한 뼘 열고, 10분간 스트레칭을 한 후, 이불을 정리하는 것

- 출근길 지하철에서의 독서

-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로 향할 때의 '오돌출: 오분 돌아가는 출근길'

- 출근 후 오전 보고를 마친 다음 내려 마시는 드립 커피

- 평일 저녁의 야등

- 주말 아침의 등산

- 목요일 저녁의 글쓰기 모임 ♥

- 약속 없는 저녁의 혼술

- 약속 없는 주말의 카페


이들 중 8월 들어 소홀해진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1번 빼고 전부 다.라고 할 수 있겠다. 지하철 독서는 어떤 모임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라는 책을 읽는다기에 열심히 따라 읽어보는데, 재미는 있지만 양이 워낙 방대해서 몇 주 째 읽고 있고, 날이 너무 덥거나 비가 오거나 뭐 그런 핑계로 출근길에 잘 돌아가지도 않는다. 등산은 PT 트레이너가 무릎이 상하니 한 달에 한 번만 가라고 해서.. 그 핑계를 대어 본다.


사실 이런 핑곗거리를 찾아 이유를 대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


대게 이런 일상을 일상답게 만드는 습관들은...... 그냥 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 글을 썼고, 집에 가서 혼술을 할 거다. 주말엔 오랜만에 아차산에를 가야지. 야호. 세 개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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