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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Dec 04. 2021

10년 전에 살던 집에 택배를 보내고 생긴 일

대체로 데면데면, 때때로 친밀한 '이 사람'에 대하여


자, 스무고개를 시작해보자.     


1. 오늘은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2. 지금껏 나는 다섯 명의 ‘이 사람’을 거쳐 왔다.

3. ‘이 사람’은 대부분 꼭대기 층에 산다.

4. ‘이 사람’과 나는 월에 한 번, 통장을 통해 대화한다.

5. ‘이 사람’은 내 휴대전화에 등록된 연락처 중 가장 긴 호칭을 가졌다.     


시간 관계상 스무고개 대신 다섯 고개로 종목을 변경하겠다. 혹시, 마음속으로 예상 답을 외친 분이 있으실지.     

다소 싱겁지만, 정답을 공개하자면 “집주인 아주머니”다. 자취생이라면 뒤의 네 글자를 다양한 형태로 바꾸어가며 입에 올려보았을 것이고, 아주 낯선 분들도 있겠다. 공교롭게도 서울살이를 하며 살았던 집 대부분의 ‘부동산 임대차계약서’ 상 나의 갑(甲)은, 엄마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아주머니셨다.     


나는 ‘이 사람’들과 대체로 데면데면했고, 때때로 친밀했으며, 드물게 얼굴을 붉힌 사람도 있었다.     


오빠와 함께 오래된 주택의 반지하 투룸에 살던 시절, 정월대보름이면 따끈따끈한 찰 오곡밥을 나누어주시던 집주인 아주머니가 ‘때때로 친밀’의 주인공이다. 나는 찹쌀밥을 무지하게 좋아하지만, 든든하고 영양 가득한 그 밥 한 끼 때문에 친밀함을 느낀 것은 결코 아니다.     


-

2021년 1월, 새해를 맞아 스스로 선물을 하기 위해 인터넷 쇼핑을 했다. 오래전 가입해둔 쇼핑몰 앱을 내려받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몇 차례 틀린 후 겨우 로그인할 수 있었다. 쇼핑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났다. 나지막하지만 반질거리는 귀여운 로퍼와 언젠가 매장에서 신어보고 마음속 장바구니에 이미 담아두었던 스웨이드 재질의 부티. 두 켤레를 설레는 맘으로 주문했다.

     

이틀 후, 배송이 완료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택배가 문 앞에서 기다리는 퇴근길은 항상 설레기 마련이다. 나는 3층에 거주하고 있는데, 택배가 온 날은 부러 계단으로 올라간다.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벽 뒤에 가려진 택배 상자가 한 뼘씩 보이는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변태는 아니다) 그날도 그랬다. 피곤함도 잊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2.5층에 다다랐다. 이내 호흡을 가다듬고, 남은 0.5층은 한 칸 한 칸 올랐다.


그런데…….     


택배가 있어야 할 문 앞이 텅 비어 있었다. 밀려오는 허탈감에 등 떠밀려 집에 들어왔다. 곧장 앱을 켜 배송상태를 조회했다. 분명 ‘배송 완료’라고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때, 아래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관악’?     


다급하게 여러 버튼을 눌러 확인했다가 머릿속이 식겁 잔치를 벌였다. 배송지에 ‘관악구 청림동’으로 시작하는 주소가 태연하게 적혀있는 것이다. 손가락을 접어가며 세어보았다. 일, 이, 삼, 사……. 십 년이었다. 정확히 십 년 전에 살던 집으로 택배를 보낸 거다. 이런, 십 년.     


전화번호부를 뒤적였으나, 집주인 아주머니의 연락처는 역시나 없었다. 담당 배송 기사님께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추가금을 낸다면 내일 다시 가서 물건을 보내줄 수 있다고 하셨다. 그 집에 배송하러 간 건 처음이었다며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

그때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누구신데 여기 택배를 보내셨어요?”

“혹시 청림동인가요? 아주머니! 저 S이에요! 십 년 전에 살았던 남매요!”

“그런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아! 너 J 동생이니?”     


그렇다. 아주머니에게 나는 그저 예의 바르며 착실한 에스대생의 동생일 뿐이었던 거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릴 때는 오빠만 좋아하는 어른들을 보면 괜히 심술이 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덕에 나를 기억해 주신 것 아닌가. 이 상황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 재미있었고 아주 감사했다. 반가운 통화가 이어졌다.


“그래~ 여기 택배가 올 일이 없는데 놀라서 전화했지 뭐니. 반갑다, 얘. 그나저나 J는 어떻게 지내니?”

“오빠는 인천에 있다가 통영으로 내려갔고요. 재작년에 결혼했어요!”     


아주머니는 아직 그 건물에 살고 계신다고 했다. 우리가 살았던 반지하 202호는 빈집이 된 지 꽤 되었다고도. 주말에 택배를 찾으러 가도 되겠냐 여쭤보았더니 택배는 신발장에 넣어 둘 테니, 편할 때 와서 찾아가라고 하셨다.     


-

다가온 주말, 십 년 전으로 여행을 떠났다.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5515A번 버스에 올랐다. 그래, 이 공기였다. 버스는 늘 그랬던 것처럼 봉천고개의 꼭대기에 올라 회차지에 다다랐고, 설레는 맘으로 내렸다.     


서울에 살며 가장 오래 살았던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택배를 찾고, 준비한 작은 선물을 주인집 앞에 놓아두었다. ‘노크해볼까?’ 했지만, 대면의 부담감이 있는 시기이기도 하고, 그냥 그 옛날의 모습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 후, 아주머니로부터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고맙고 반가웠으며, 건강히 잘 지내라는.     


-

지속 가능한 관계에 집중하며 살아왔는데, 이번 일을 겪으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찰나의 실수로 끊어진 인연도 얼마든 다시 ‘반짝’하고 연결될 수 있으니, 다양한 호칭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반가운 존재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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