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빗나간 순간들

결혼식의 모양

by 이새란


“내 딸. 무뚝뚝한 아버지가 서툴게 키웠는데, 어느새 마음도 나이도 꽉 차서 짝을 찾은 너를 보니 참 다행이고 대견하다.”

아빠와 눈이 마주친 순간, 흔들리는 눈빛에 눈물이 비치는 것을 본 것 같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감정들이 그 눈동자에 담겨 있었다.


아, 이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아빠는 여느 때처럼 당당하게, 구수한 사투리로 정직하게 준비한 문장을 읽어 내려가고, 나는 아마도 그런 모습이 애틋해 울컥거리는 마음을 다잡겠지?’ 예상은 딱 거기까지였는데, 아빠가 나보다 먼저 울컥 치솟는 감정에 목메어 떨리는 숨을 고르실 줄이야.


그때부터는 아빠의 덕담 청취를 포기했다. 단상에 놓인 꽃의 모양을 뜯어보고,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친구들 결혼식에 가면 괜스레 눈물이 그렁그렁 대던 기억에 어제 아빠의 리허설을 열심히 청취하고 영상까지 찍어두었으니까.


밝고 즐거운 결혼식을 만드는 것이 나의 작은 목표였으니, 작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눈물을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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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예상을 빗나간 순간은 그때만이 아니었다.


“식 시작 5분 전입니다!”


조금 전까지 반가운 얼굴들이 드나드는 이 공간에서 신나게 인사하고 웃고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신부대기실은 텅 비어있었고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리고 그때야 알게 되었다. 신부가 입장할 때는 묵직한 드레스와 두툼한 부케를 한 손에 들어야 하고, 드레스는 통통 차듯이 걸으라는 말을 들었지만 연습할 시간은 없고, 아빠의 왼쪽에 서고 남편의 오른쪽에 서야 한다는 사실 같은 것들을.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은 가장 중요한 순간이니까,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지. 그런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대체로 별 탈 없이 환하게 웃으며 여유롭게 입장하는 신부들의 모습만 봐왔으니 당연히 나에게도 그 장면이 적용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의 손을 잡고 한 계단 올라서는 순간 드레스 끝자락이 구두를 파고들었다. 몇 차례 뒤뚱거리다가 겨우 정신을 다잡고 드레스를 쥔 손에 힘을 꽉- 준 채 광대를 한껏 끌어올린 채 걸어갔다.


“@$^@&#하고 @$#*)@#&할게”


옆에서 걸음을 맞추던 아빠가 옆에서 무어라 말을 걸었고,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쏟아지는 조명과 쿵쾅대는 심장에 정신을 빼앗겨 어느새 이미 신랑이 눈앞에 있었다. 누군가 옆에서 ‘아버님, 사위 안아주세요~’ 하고 외쳤고, 아빠는 나와 포옹을 하려다 주춤하셨다. 아빠에게 눈짓으로 신랑을 안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사회자가 “아버님이 따님을 보내기 싫으신가 봐요~” 하자 장내에 웃음이 일었다.


아빠가 신랑과 포옹을 하고 자리로 향하는 순간, 조금 전 입장할 때 나에게 건넨 한 마디가 문장으로 완성되어 머릿속에 들어왔다.


“저 앞에서 니 먼저 포옹하고 사위 안을게.”


하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 우리는 다음 순서를 향해 나아가야 했다.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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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서를 마치고 행진을 하기 위해 하객석을 향해 돌아섰을 때, 조금씩 긴장이 풀리며 하객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했던 결혼식이지만 단상에서 뒤돌아 마주할 고마운 분들의 얼굴과 표정은 상상하지 못했다. 다시금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시기였기에 그저 축하의 메시지만으로도 감사했고, 누구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지는 미리 떠올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테이블마다 자리한 친척과 지인의 얼굴을 살피며 너무나 감사하고 반가웠다. 한 사람 한 사람 눈에 담기 위해 애썼다. (오래오래 갚으며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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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의 결혼식’은 어떤 모양일지 수백 번을 상상했다. 물론 상상 속 결혼식에는 치맛자락이 밟힌다거나, 아빠가 눈물을 보인다거나, 함께 울고 웃으며 눈을 마주치는 하객의 얼굴은 없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예상한 대로 흘러간 순탄한 순서는 빨리 감기를 누른 마냥 휘릭- 하고 증발했다. 하지만 예상 밖의 장면들은 슬로 모션처럼 기억 속에 세세하게 남았다. 그러니까, 예상을 빗나간 순간들은 완벽한 결혼식에 다다르지 못한 오차가 아니었던 것이다. 애초에 나의 결혼식은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아무것도 빗나가지 않은, 어떤 완벽도 사전에 규정되지 않았던, 나의 결혼식은 2월 12일에 비로소 온전한 모양으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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