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구석

엄마를 닮아가는 내 모습

by 이새란


고향 집 작은방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창고처럼 쓰이는 냉기가 가득한 방인데, 한번 발을 들여놓게 좀처럼 나올 수가 없다. 구부정한 자세로 차가운 방바닥에 앉아 바닥이 적당한 온기를 가질 때까지 가만히 집중하게 된다. 책장 맨 아래 칸에 빼곡히 자리한 앨범들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는 그곳에 앉아 어린 내 모습을 보는 일을 좋아했다. 서너 개의 앨범을 순서대로 넘겨보며 아직은 세상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갓난아기의 얼굴,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볼록한 볼과 깊숙한 보조개를 가진 아이의 표정을 보았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훌쩍 커버렸다는 것에, 아니 컸다고 표현하기에도 징그러울 정도의 어른이 되었다는 것에 생경함이 들곤 했다.


요즘에는 엄마와 아빠의 청춘이 궁금해 내 앨범보다는 부모님의 오랜 앨범을 찾게 된다. 낡은 흑백 사진 속에서 양손으로 책가방을 쥐고 있던 양 갈래머리의 중학생 엄마, 까까머리로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던 고등학생 아빠를 마주하는 것이 즐거웠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까지 각자 살아오던 세계와 결국은 만나서 함께 만들어간 시간이 사진 속에서 한 장 한 장의 이야기로 피어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앨범은, 두 사람이 아직 만나기 전, 각자 회사 산악회의 일원으로서 숱한 정상을 올랐던 시절의 것이다. 산에 관심이 없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사진이 이제 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특히, 한 사람의 아내이자 엄마가 되기 전 이십 대 상숙 씨에게서는 어쩐지 익숙한 모습이 자꾸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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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 사진 완전 나 닮았네요!”

“니가 나를 닮은 거겠지.”


딸이 엄마를 닮았다는 사실이 뭐 그렇게 새삼스러운가 싶겠지만 내겐 꽤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포동포동 살이 올랐고, 학창 시절 대부분을 통통하다기엔 뚱뚱하고 뚱뚱하다기엔 통통한 그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건강하고 활기가 넘치는 가족 틈에서 매사에 둔하고, 게으르고, 짜증이 가득한 모난 돌이 되어갔다. 부모님은 똑같은 사랑을 주셨음에도, 스스로 미운 오리를 자처하며 숨을 곳을 찾아다녔다. 특히, 산에 갈 때는 심술이 더 심해졌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부모님을 따라 산에 오르는 일은 어린 나에게 커다란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억지로 한 걸음씩 오르다 체력의 한계에 부딪힐 때면 쉽게 짜증을 냈다. 올라가기도 싫고 그렇다고 다시 뒤돌아 내려갈 엄두도 나지 않는 산 중턱에서 엄마 아빠에게 원망을 쏟아내던 장면은, ‘10대 사르몬리 단편선’의 클리셰로 여겨도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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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내가 어떻게 이토록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도저히 한마디로 정의되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철이 들었고, 자연스럽지 않게 살을 뺐고, 부모님을 따라 산에 다니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 또래와 함께 산을 올라보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등산 모임에 들어갔고, 좋은 사람들과 맑은 공기를 마시는 일이 너무나 즐거워졌다.


1915m의 지리산 정상.
그때의 기분은 저 바위에 앉은 사람만이 알겠죠.


84년 10월, 스물셋이던 상숙 씨는 지리산 정상에 올랐던 기분을 이렇게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앨범에서 이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비로소 내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를 깨닫고야 말았다.


그 이유는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의 딸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참으로 닮은 구석이 없어서 저기 거제대교 밑에서 주워온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우리 엄마를 닮아가고 있었다. 한번 누워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게으름을 가지고 있어서 일상의 스위치가 켜졌을 때 가능한 한 바지런히 움직이려는 것이나, 딱히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동창회에서 에어로빅 시범을 보인 엄마처럼 내성적이지만 활동적인 성격이나, 현재에 집중하며 살고자 노력하는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을.


엄마의 딸이라서, 닮은 구석이 하나 둘 늘어가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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