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선택의 끝

by seomar

결혼식 날짜는 뜻밖에 빨리 잡혔다.
지후의 프러포즈에 생각보다 수진이 쉽게 “그래요”라고 말해버렸고,
지후는 당황하면서도 기뻐했다.

“갑자기 왜 그래?”
지후는 웃으며 물었다.

수진은 애써 웃었다.

“뭔가, 이젠 머뭇거리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냥… 가야 할 때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지후는 더 묻지 않았다.
그리고 수진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정우는 그 소식을 우연히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조용히 파일을 정리하던 손만 잠시 멈췄다.
그 뿐이었다.

“결혼한대.”
출판사 동료가 말했다.

“지후 선배랑. 꽤 오래 만났나 봐?”

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잘 됐다.”

그 웃음은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았다.
너무 자연스러웠고, 너무 담담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날, 정우는 아무도 없는 골목을 두 시간 넘게 걸었다.

비가 오는지도 몰랐고, 옷이 젖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온몸이 서서히 굳어가고 있었다.
그건 병 때문만은 아니었다.


며칠 뒤, 수진은 정우를 불러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고, 만남도 짧았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잘 지냈어?”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응, 나야 뭐… 결혼 준비 중이지.”

잠깐의 침묵.
수진이 먼저 말을 이었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내가 지후선배랑 잘 될 줄 알았어? 줄곧 너와 함께 시간이 많았는데,

네가 나한테 축하해준 거.나, 그거 듣고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웠어.”

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모든 걸 무너뜨릴 것 같았다.

수진이 눈을 피하며 말했다.

“사실… 기다렸거든.
니가 고백했으면 하고”

정우는 손을 감싸쥐었다.
식은땀이 손바닥에 맺혔다.

“근데, 네가 웃으면서 잘됐다고 하니까…
그래야 하나보다, 하고 그냥 가기로 했어.”

그 말에, 정우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너한테 제일 좋은 선택인 것 같아서.”

수진은 말없이 정우를 바라봤다.
그 눈빛엔 울음도, 분노도 아닌
그저 지친 감정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결혼식 당일.
수진은 아침부터 속이 메스꺼웠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였다.
신부 대기실에 앉아 거울을 보았지만,
그 속의 여자는 웃고 있지 않았다.

하객들 속에서 정우를 찾았다.
당연히 오지 않았다.
지후는 그런 수진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한 척 했다.

“준비됐어?”

지후가 손을 내밀었다.

수진은 한 박자 늦게 손을 잡았다.

“응. 준비됐어. 나 잘할 수 있어.”

그 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말 끝에 눈물이 고였다.


결혼식은 조용히 끝났다.
잔잔한 축복, 형식적인 박수, 웃는 사진들.

밤이 되자, 수진은 숙소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지후는 잠시 밖에 나갔고, 방엔 정적만이 남았다.

그녀는 가방 안을 뒤졌다.
꺼내지 말아야 했던 걸 꺼냈다.

정우가 그려줬던 그림.
햇살 든 골목, 창가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
이젠 너무 오래된 종이지만,
그림 속 소녀는 여전히 따뜻했다.

그 순간, 수진은 확신했다.
자신이 결혼식을 끝내고도 울고 있는 이유를.

다음 날, 수진은 병원을 찾았다.
지후가 말했던 ‘정우의 병원’을.
그리고 거기서 진단서 사본 하나를 손에 넣었다.

‘강직인간증후군 – 진행성 – 유전성 의심 – 치료 불가’

그 짧은 문장들이,
정우가 왜 그토록 조용했는지,
왜 웃으면서 거리를 두었는지,
모두 설명해줬다.

손이 떨렸고, 입술이 말라붙었다.
종이를 접어 가방에 넣고 나오는 동안,
수진은 이미 결정하고 있었다.


그날 밤, 수진은 지후에게 편지를 남겼다.

"미안해요.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어요.
그저, 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어요.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이제야 알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짧은 글.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아무리 길게 말해도 전달할 수 없는 깊이였다.

수진은 조용히 짐을 챙겨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었다.
가야 할 사람,
아직 이별하지 못한 사랑,
그리고 사라져가는 기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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