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죽음을 극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의 암 오진 사건을 통해 드러난 나의 교만함과 무지

by 안치형

죽음.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죽고 나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텐데 두려움을 느낄 새나 있을까요? 미련? 이하동문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죽음 앞에 움츠러들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죽음은 인간이 가장 자유로워지는 길이라는 생각까지 했었죠.






그날도 죽음에 대해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건강검진을 하고 왔는데 암이 의심된다고 하더라.” “암? 갑자기 웬? 병원에서? 의사가? 왜?” 마치 언어능력이 마비된 사람처럼 말을 더듬었습니다. “더 자세히 검사해봐야 한다는데. 아닐 거야! 아픈 데가 하나도 없었거든. 오진이야 오진!” 억지로 내는 확신의 목소리. “설령 암 이래도 괜찮아. 보험 다 들어놨어. 정 안되면 몇 년 살다가 가는 거지 뭐. 괜찮아 항암치료받는 거 많이 봤으니까. 그래도 엄마 생각에 암은 아냐. 그러면 안 되는 거야!” 흥분과 분노, 서운함과 망연자실이 한데 섞인,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없는 그런 감정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습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황급히 집을 나섰습니다. 회색빛 땅거미가 내려앉은 거리. 뛰다시피 하면서 한 손으로는 연신 휴대폰으로 검색을 했습니다. ‘암 오진 케이스’, ‘위장 조영술 암 발견’, ‘암 환자의 심리 변화’ 살면서 이렇게 암에 대해 절박해본 적이 있었을까. 전화받기 전에 묵상했던 내용 때문에 제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그리고 수용. 일명 암 환자의 심리 5단계가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모두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도착하자마자 안방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니는 조용히 신문을 보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가벼운 한숨을 내쉬더니 신문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오진일 거야.” 어머니는 머리맡에 놓아두신 건강검진 결과표를 저에게 건네주시고는 말을 이어 가셨습니다.


“엄마가 성당에서 장례봉사를 많이 하잖아. 그래서 아는데 암 걸린 사람들 보면 엄청 야위어 있어. 그런데 엄마는 그런 게 없거든, 몸무게도 그대로고. 그러니까 암은 아닌 게 확실해. 위장 조영술을 하면 가끔 이런 일이 생긴다더라.” 아니라고 하시지만 목소리에는 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묻어 나왔습니다.


“맞아요. 오면서 검색해봤는데 아닐 확률이 높다던데요.” 확률 이야기를 꺼내는 게 어찌나 죄송하고 싫던지. 마음 같아서는 “백 프로 아니래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다고 위로가 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오로지 어머니가 감내해야 할 싸움.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제 자신이 얼마나 무력했는지요. 어머니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죽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고작 눈치 보는 것 밖에 없으면서!’






그동안 무엇을 묵상했던 것일.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았을까. ‘내가 기억하지 못하면 그만이지’라는 어리석고 이기적인 생각. 그런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 죽음은 제가 아닌 저의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찾아간 것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진실에 눈을 떴습니다. 죽음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동안 무지함과 교만함에 쌓여있었음을. 새벽의 도둑처럼 들이닥친 죽음. 그 앞에서 저는 철저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며칠 후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상기된 목소리. “오늘 병원 다녀왔는데 암 아니래. 엄마가 그랬지? 정말 십년감수했다. 너도 매년 건강검진 꼭 받아. 미리미리 준비해.” 그야말로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는데, 그 기도에 응답을 해주셨나 봅니다.


이제 함부로 죽음을 극복했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습니다.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일을 안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 가운데는 교만과 무지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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