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가 아닌 겸손을 배울 때 조금씩 성숙해 집니다.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고 싶다는 분을 만났습니다. 실현 가능 여부를 떠나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만 들어도 얼마나 큰 사랑을 품고 계신지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종류에는 크게 아가페적인 사랑과 에로스적인 사랑이 있다고들 하죠. 에로스가 너와 나의 삶을 합의하에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면, 아가페는 우리 모두의 인생을 조건 없이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다고 볼 수 있을 테고요.
에로스의 본질은 자기만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받고 싶은 나, 인정받고 싶은 나, 즐겁고 싶은 나를 충족시키기 위한 마음. 반면 아가페는 자기만족을 넘어 너의 완성이 목표라는 생각이 드네요. 의도치 않았지만 너의 행복으로 인해 나의 행복마저 충족되는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이랄까요. 본능적으로 내 마음부터 신경 쓰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위대해 보이는 사랑.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가페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제 속을 썩여도 뒤돌아서면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문득문득 느끼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런 마음에도 에로스적인 생각이 군데군데 얼룩져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든 사람보다 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정말 나의 욕심이 하나도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말이죠. 예의 바른 아이, 사려 깊은 아이, 올바른 신앙을 가진 아이. 이런 육아관에 부합하도록 아이의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자주 교만해지는 제 마음을 봅니다. 일하거나, 아이를 키우거나, 그 밖에 다른 어떤 일을 할 때도 마음 깊은 곳에서 저의 의로움을 스스로 칭찬하는 제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들.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고들 하지만 조건 없는 사랑을 보며 저는 생각합니다. 노력해도 결코 이루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고. 그리고 조건 없는 사랑 앞에서 절망이 아닌 겸손을 배울 때 조금은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죠. 적어도 사랑에 관해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