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꼬맹이가 한 명 있다. 요즘 사교육은 나이를 가리지 않다 보니 아이의 친구들은 벌써 서너 개의 학원을 다니는데, 우리 애는 유치원 외에 따로 다니는 게 없다. 어차피 공부 머리는 타고나는 거고, 지금은 공부할 때가 아니라 자기 하고픈 것 마음껏 할 때라고 생각하는 아내 덕분이다. 심지어 아이는 숙제도 안한다. 하기 싫다고 하자 아내가 유치원에 전화해서 우리 애는 숙제 안 주셔도 된다고 했단다. 이러다 나중에 따라잡기 힘든거 아닌가 내심 불안해서 몇 가지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전적으로 아내의 의견을 따른다. 솔직히 아이 교육에 관한 한 나보다 아내가 더 관심이 많기도 하고, 아내만큼 공부를 잘한 사람도 드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말이다. 알아서 어련히 잘할까 라는 일종의 믿음이랄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이런 아내도 독서만큼은 철저하게 챙긴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가 책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를 잘한다. 아이가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때는 하루에 몇 시간이고 동화책을 읽어줬다. 안 그래도 기관지가 약해서 환절기 때마다 홍역을 치르는 아내인데, 콜록콜록 거리면서도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다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자연스럽게 독서습관이 들었다. 이른 아침 사부작거리는 소리에 거실로 나가보면 어김없이 아이가 책을 읽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 식구들과 두 시간 가량 기도 모임을 하는데 그때도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아이가 대견하다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어깨가 다 으쓱거리는데 아내에게 참 감사하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에게 뭘 해주면 좋을까.
여름이고 하니 더위도 식힐 겸 아이를 데리고 수영장에 갔다. 수영을 배워 본 적 없는 데다 겁도 많아서 평소에는 깊은 물 근처에도 안 가는 아이인데, 올해는 좀 다르다. 잠깐 발이라도 담가 보겠다며 자꾸 성인풀에 기웃거리기에, 좋다 싶어서 구명조끼를 입히고 계단 근처에서 놀게 해줬다. 한참 놀더니 이제 조끼를 한번 벗어보고 싶은 눈치다. “벗어봐. 아빠가 잡아 줄게.” 막상 맨몸으로 첨벙 입수를 하고 나니 그제야 물 깊이가 실감이 났나보다. 금세 겁을 먹고는 매미처럼 계단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이참에 물이랑 좀 친하게 해줘야겠다 싶었다. 운동도 시킬 겸.
처음에는 겁이 좀 나긴 했다. 괜히 큰일 날까 봐. 이래라저래라 잔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데 아빠가 옆에서 계속 잔소리를 하니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못하겠어.”라고 했다. “아니야 잘하고 있어.” 애써 칭찬해줘도 좀체 표정이 좋아지질 않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아이가 제안을 하나 했다. 제안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놀이를 생각해 냈다고 보는 게 맞을 텐데, 아빠가 락커 키를 물속에 던지면 자기가 찾아오겠단다. 일명 열쇠 찾기 놀이.
열쇠 찾기 놀이 삼매경
며칠 동안 유아풀에서 열쇠 찾기 놀이를 했다. 근처에 있던 아이들이 자기도 하고 싶다고 해서 함께 하기도 했는데금방 시시해 하더라. 반면 우리 애는 그게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몇십번이고 계속 던져 달라고 하고. 유아풀에 쭈그리고 앉아서 하염없이 락커 키를 퐁당퐁당 던지는 아빠와 지치지도 않고 몇십 분이나 풍덩풍덩 키를 주어오길 반복하는 아이. 평화로워 보일 수는 있겠다. 당사자인 나는 지겨워 돌아가시겠지만. 어쩌랴 애가 이게 재미있다는데. “아빠, 우리 깊은 데서 해볼까?” 어쭈, 깊은 곳에 가겠다고? 알겠다고 하고 성인풀로 향했다. 물론 계단 근처에서만 놀기로 하고.
“자, 잡아봐.” 바로 아래로 키를 빠트렸다. 아이는 마치 생명줄처럼 계단을 꼭 붙잡고 잠수를 시도했다가 1초도 안 돼서 푸푸 거리며 나왔다. 겁이 났겠지. 그러기를 몇 차례. 호흡이 조금씩 길어지더니. 결국에는 바닥까지 가서 열쇠를 잡는 데 성공했다. “이야 잘했다! 그것 봐 노력하니까 되지?” 유아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성인풀에서 같은 놀이를 수십 번 했다. “아빠 조금 멀리 던져봐.” “진짜? 괜찮겠어?” 아이는 자신감이 붙었는지 스스로 거리를 조금씩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너무 멀다 싶으면 조금 가까이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물론 임무를 마치고 나면 자석에 이끌리듯 계단에 착 붙어버리긴 하지만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던 아이는 이제 계단에서 꽤 먼 곳까지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호흡이 달리면 바둥거리며 숨도 한두 번 쉴 정도가 됐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중간중간 호흡도 하고. 누가 뭐래도 수영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겐 그저 허부적허부적거리는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매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내 눈에는 분명 수영이었다. 강요하지도 않았고 따로 별다른 자세를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이제 25m 레인의 1/3 지점까지 수영해서 갈 정도가 되었다. 아이는 그렇게 조금씩 자기한계를 극복해 나가고 있었다.
탁월한 인간을 기르는 것
고대 그리스의 교육목적은 ‘탁월한 인간을 기르는 것’이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행동의 인간, 지혜의 인간으로 기르는 것이었는데, 체육의 경우 7살이 되면 가르쳤다는 점이 눈에 띈다. 우리 아이만 봐도 작년보다 올해 확실히 근력과 지구력, 끈기가 좋아졌다. 무엇보다 의사소통이 훨씬 원활해졌고. 그래서 이맘때쯤 운동을 가르쳤지 싶다. 또 하나 특징으로 즉흥적으로 가르쳤다는 점이다. 무엇을 해야만 한다가 아니라 그때그때 아이의 상황에 맞게 가르쳤다는 뜻이리라. 해보니 알겠더라. 아이들은 각자 자기만의 속도가 있다. 운동신경이 좋은 아이는 어떤 운동이든 금방 배울 테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을 게다. 누가 낫고 못 한 문제가 아닌 타고난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굳이 경쟁을 시키고 비교를 하겠다면 우열을 가릴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아이에게 선택권을 맡기니 아이 스스로 자기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것을 직접 목격했으니까 말이다. 언젠가 제대로 된 운동 자세를 배우겠지만 그전까지 아빠로서 나의 역할은 명확해졌다. 바로 끈기 있게 아이의 성장을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것. ‘탁월한 인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최소한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깨닫고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탁월해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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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형 / 프리랜서 작가, 브런치 작가, 기업 블로그 마케터. 나에게 어울리는 인생, 후회없는 인생을 선택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나를 찾아가는 생각연습'을 출간했습니다. <네이버 인문 화제의 신간10> <YES24 2019 여름 교양 필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