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요즘에 나는 크게 두 가지 경우에서 그런데 첫째가 성경 말씀이고 둘째는 이과 센스다. 조금 더 상세히 말하면, 그간 말로만 신앙을 고백했을 뿐 정작 믿음의 요체인 말씀에는 별로 집중한 적이 없었다는 자각이 일었다. 그래서 매일 성경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려 노력 중이다. 설교를 듣고, 참고자료도 찾으면서 읽다 보면 이미 익숙한 내용에서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별생각 없이 읽었던 말씀이 사실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동안 나는 뭘 읽었었나 싶어서 부끄럽기도 하다.
이과 센스의 경우 내게 부족하단 것은 알았지만 정작 무엇이 부족한지 몰라서 어떻게 보충해야 할지 몰랐던 영역이다. 예전에 내가 담당했던 고객사와 매달 한 번씩 미팅을 한 적이 있다. 고객사 사장님과 실무자들, 우리 회사 부사장님과 실무자들이 모두 참석하여 고객사의 현재 진행 중인 건에 대해 실무진의 간략한 브리핑을 듣고 서로의 필요를 나누었고, 다음으로 고객사의 미래전략에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논의하곤 했다. 양사를 통틀어 유일한 사원이었던 나는 그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를 따라가는 것도 벅찼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회의 내용을 녹음해가면서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핵심적인 내용을 놓치기 일쑤였다. 아직 잘 몰라서 그러려니 스스로 위로했지만 그럼에도 의심되는 것은 있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건 아닐까?’
죄송한데 들었지만 들리지가 않습니다
이과 출신 아내와 함께한 세월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간다.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때때로 말다툼도 한다. 때로는 본능만 있는 파충류처럼 배고픔에 예민해져서 사소한 일로 투닥 거리기도 하지만, 열에 일곱은 이과 특유의 추상화와 문과 특유의 구체화가 서로 어긋나 생기는 다툼이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과거의 당신 잘못은 생각지 않는 내로남불”이라 했고, 나는 “현상에 집중하지 않고 왜 또 과거로 가느냐”라고 했다.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지기 싫어서 억지를 부린 것이기도 했다. 이과 출신인 아내는 차근차근 논리를 쌓아나가다 내 말과 행동에서 불일치를 발견할 때 분노한 것이고, 문과 출신인 나는 논리는 됐고 작금의 현상과 나의 감정에 치중했다.
‘에이, 들어보니 당신이 잘못했네’ 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 사는 세상이 어디 논리적이기만 하던가. 제아무리 아이폰이라도 무엇이 혁신이고 무엇이 진보인지 말하면 엔지니어를 제외한 대다수의 청중에겐 외계어에 불과하다. CPU가 어쩌고, 화소가 어쩌고, 소프트웨어가 어쩌고.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나오기 마련이다. 셔츠 주머니에도 쏙 들어가는 앙증맞음, 갬성 넘치는 사진, 버튼은 또 얼마나 깔끔하고, 색상은 세상 파스텔파스텔 하다고 알려줘야 그제야 사람들은 ‘어머 저거 사야 해’라며 환호성을 지른다. 엔지니어로서는 참 씁쓸할 것이다. 그렇게 만들려고 수년을 노력했는데 정작 무슨 노력을 했는지에는 관심이 없으니. 하지만 어쩌랴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걸. 이유 불문하고 우리 편이 착한 편, 예쁘면 최고 아니겠나.
아 모르겠고 짱이야!
다만 우리 부부 사이에선 그렇게 대충 넘어가 지진 않는다. 나름의 영역으로 끝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데, 솔직히 말하면 내가 너무했다. 갑자기 백기 투항은 아니고, 어떤 면에서 너무 했냐면 내가 논리가 부족했다. 어디 가면 말 잘한다는 소리 듣는 나지만, 엄밀히 말하면 말 잘하는 것과 논리적인 것은 같지 않다. 개똥 같은 말도 유려한 수사를 갖다 붙이면 ‘어, 너 말이 맞는 것 같아’라고 찬양을 들을 수 있다. 세상에는 증명되지 않았거나 증명할 수도 없는 수많은 것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퍼져있다. 혹은 이미 증명되었는데도 너무 어려워서 여전히 예전의 믿음만 답습하고 있는 것도 있고. 이를테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든지, 애들 공부 잘 시키려면 좋은 학원에 보내야 한다든지 하는 것부터, 술은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든지, 혀는 부위별로 느끼는 맛이 다르다든지, 티렉스가 쥐라기 시대에 살았다든지 하는 것까지 무궁무진하다.
나는 이런 능력이 아내보다 뛰어나다. 일일이 따지고 들지 않기 때문에 내가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더 많은 근거를 가져다 댄다. 반면 아내는 내가 쏟아내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판단하느라 시간이 걸린다. 언뜻 내가 맞아 보이지만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천천히 검증해가는 아내는 결국 며칠 뒤에라도 내가 틀렸음을 증명해낸다. 아내는 그제야 자기가 화가 난 실체를 깨달았지만 난 이미 화가 풀려있다. 버스는 떠났다. 이러니 아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허허 그런 일이 있었다굽쇼. 아무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람쥐
그러다 내가 성경 말씀을 전보다는 조금 더 깊이 보기 시작하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분명 열 번은 더 본 구절 같은데도 마치 처음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당연히 이럴 거로 생각했는데 파고들어 보니 전혀 다른 내용임을 알았을 때, 나는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건 아닐까?’ 한 눈이 아닌 두 눈으로 세상을 보려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균형 잡힌 시각이 절실했다.
아내에게 고백했다. “내가 너무 한쪽만 보는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좀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좀 논리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까?” 이 문제로 아내와 한참 고민했다. 아내 입장에서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을 내가 배워보고 싶다고 하니 이걸 어디부터 설명해줘야 하나 싶었을 게다. “논리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논리를 배워야 하겠지. 말이 쉽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로 들렸다. 그래서 어떻게 논리를 배울까 고민하다 내가 잘하는 것을 했다. 일단 했다. 도서관에 가서 이과, 공대, 과학을 키워드로 도서검색을 하고 그중에 내가 볼만한 아주 저렙의 책부터 빌렸다. 다행인건 보다 보니 내가 아주 맨몸은 아니었다. 나름 알고 있는 것들이 많았고, 보는 내내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수긍되는 것도 많았다.
아무튼 지금 주니어 레벨로 이과 센스를 키우고 있다.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보다 보면 언젠가 시니어 레벨로 가고 시니어 하이레벨로 가고, 그러다 보면 균형 잡힌 시선을 가진 백발이 성성하고 안광이 번뜩이고 우도 좌도 아닌 균형 잡힌 멋진 노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늘 생각하지만 죽기 전까지 시간은 언제나 내 편이다. 나의 부족함을 알게 해준 아내에게 감사하다. 당신 인생에 왠지 억울하고 뭔가 덫에 걸린 것 같은 대화는 이제 끝이다. 한 40년만 기다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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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형 / 프리랜서 작가, 브런치 작가, 기업 블로그 마케터. 2019년 6월. [나를 찾아가는 생각연습]을 출간했습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 담았습니다. <네이버 인문 화제의 신간10> <YES24 2019 여름 교양 필독서>에 선정되었습니다. 위 글을 쓰고 이런 소개를 쓰니 부끄럽기 짝이 없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