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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형 Feb 04. 2020

다시 찾은 인생의 등불

부모님 잔소리처럼 권위적이고 자애로운 명령

괜찮을 줄 알았지

삼치를 굽고 있었다. 반대편을 익히기 위해 프라이팬 뚜껑을 열자 '치이익'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노란 기름이 튀었다. 저만치서 놀던 아이는 그 소리가 궁금했나 보다. 어느새 내 곁으로 와서는 프라이팬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려 했다. “안돼. 기름 튀어.” 나는 황급히 막아섰고 깜짝 놀란 아들은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그래도 못내 아쉬운지 자라처럼 길게 목을 빼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렸다. 내겐 너무 익숙한 것이 아이에겐 여전히 낯설다.


내가 명령하면 아이는 대개 바로 듣는다. 경험상 아빠 말을 듣는 게 좋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듣지 않을 때가 있다. 어제도 그랬다. 수영장에 가는 중이었다. 고무줄에 달린 플라스틱을 가지고 잡아당겼다 놨다가 하기에 “그만. 그러다 눈 같은데 맞으면 큰일 나”라고 했다. 하지만 듣지 않았다. 채 몇 초가 지나기도 전에 ‘탁’ 소리가 났다. 플라스틱이  저 멀리 날아갔다. 아들을 보니 엄지손가락을 다른 손으로 부여잡고 있었다. 피가 나고 있었다.


“그러게 다친다고 했잖아. 왜 그랬어?”

“아니, 나는 안 다칠 줄 알았지.”     


그래, 그럴 줄 알았겠지. 나한테는 훤히 보이는 데 너한테는 아직 보일 리 없지. 하기야 나도 그랬다. 부모님 말씀을 안 듣고 내 마음대로 할 때 꼭 크게 다쳤다. 어릴 적 스케이드보드에 심취했을 때 천천히 타라는 말씀을 듣지 않았다가 새끼손가락이 골절됐었다. 친구와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했을 때도 그랬다. 밤에는 너무 어두우니 돌아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역시나 듣지 않았다. 한 밤 중에 신나게 내리막길을 달리다가 크게 넘어졌다. 손목이 180도로 꺾였다. 부모님 말씀 들을걸 그랬다. 난 또 안 들어도 괜찮을 줄 알았지.



아 정말 모르겠다

한때는 부모님이 모든 것을 알려주셨다. 시냇물은 마시면 안 되는데 약수는 어째서 마셔도 되는지, 새우튀김은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여쭤봤고, 그럴 때마다 모든 것을 알려 주셨다. 그러나 오래가진 않았다. 숙제하다가 모르는 걸 여쭤보면 “글쎄다. 예전에는 알았는데.”라며 선뜻 답을 주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아졌다. 부모님도 모르는 게 있었다. 그때부터 부모님의 명령은 점차 권위를 잃어갔다.


성인이 되자 오히려 상황은 역전됐다. 이제는 부모님이 내게 물어보시는 일이 잦다. 공인인증서는 어디서 받을 수 있니. 연말 소득공제는 어떻게 하는 거니. 인터넷으로 사면 싸다는데 어디서 주문해야 하는 거니. 시시콜콜 여쭤보신다.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하지만, 나도 내가 경험한 선에서만 알려드릴 수 있을 뿐. 질문을 많이 하실수록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늘어간다.


그뿐이랴. 당장 내가 잘살고 있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돈 걱정하지 않으면 잘 사는 걸까.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면 잘 사는 걸까, 남들이 부러워하면 잘 사는 걸까. 아, 모르겠다. 그나마 확실히 아는 건 그간 내가 이루었던 일 대부분이 우연의 산물이었다는 것일 뿐. 과장해서 말하면, 그 자리에 허수아비를 세워놔도 될 일이었다. 영민하게 기회를 파악하고 부단히 노력해서 얻어낸 것이 결코 아니었다.



다시 성경을 꺼내든 이유

그런데도 그 당시에 나는 참으로 무지하고 간사했다. 필요가 채워지면 바로 다음 위시리스트를 써 내려갔다. ‘이것도 했으니 당연히 저것도 할 수 있겠지.’ 그때도 기도했다. 물론 대부분 조건부 기도였다. ‘이걸 해주시면, 저걸 해결해주시면’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끌어들였다. 게걸스러웠다.


그러다 몇 번의 실수를 했다.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샛길에 빠져있었다. 첫 마음은 사라지고 현실에 치어 짜증만 한가득한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회개도 했지만 자고 나면 제자리. 내 머리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싸워댔다. 자신을 세상에 증명하려는 마음과 지금이라도 멈춰서야 한다는 마음. 그런 마음은 알아챈다고, 다스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언제고 다시 찾아온다. 그것도 결정적인 순간에.


답이 필요했다. 그럴듯한 위로나, "글쎄"라고 운을 떼며 시작하는 자신 없는 말이 아닌, 명쾌하게 길을 알려주는 답이 필요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꺼내 들었다. 잔소리가 사랑으로 느껴지면 철이 들었다는 증거라는데, 신앙도 그런 걸까. 전과 달랐다. 무심코 넘겼던 구절이 내 마음을 붙잡았다. 한참 묵상하다 보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보였다. 깨달음과 함께 비할 데 없는 감사함이 차올랐다.


성경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핵심은 명료하다. 그리고 명확하다. 시대와 문화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무릇 정답이란 그래야 하지 않을까. 성경은 명령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명령은 권위적이지만 자애롭다. 어릴 적 귀 따갑게 들었던 부모님 잔소리처럼 말이다. “늦게 다니지 마라. 따뜻하게 입고 나가라. 밥 잘 챙겨 먹어라.” 한동안 잊고 지낸 인생의 등불. 그 명령을 성경에서 다시 찾는다.




“주께서 명령하사 주의 법도를 잘 지키게 하셨나이다” (시 119:4)



안치형 / 브런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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