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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살랑 Nov 14. 2023

20231114 QT 부모님을 미워한 내가 살인자입니다

민수기 35: 1-21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복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피를 보복하는 자는 그 살인한 자를 자신이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면 죽일 것이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백성들에게 성읍을 분배해 주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부지중에(accidently) 살인한 자가 피해있을 성읍, 이름하여 '도피성'을 마련하라고 하신다. 부지중 살인한 자가 판결을 받기 전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란다. '부지중에'를 고려해 주신 거다. 그런데 악의를 가지고 살인을 한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신다. 그런 사람에겐 도피성을 주지 않으신다. 


질문하기

왜 피를 보복하는 자는 죽이라고 하셨을까?


생각하기 

피를 '보복하는 자'도 죽이라고 하신다. 

보복하는 자는 또 살인을 저지를 것이니 ('것이니'니까 아직 죽인 건 아닌데) 죽이라고 하신다. 

마음에 보복하려고 생각하고 있기만 해도 잠재적 살인자라는 거다. 


부모님의 이혼과 그로 인한 상처들에 원망하고 미워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그분들이 '부지중에' 저지른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도 몰랐고 도피성도 없었던 두 분이었다. 물론 아빠엄마가 우리에게 상처를 주려고 일부러 그러신 게 아닌 건 알고 있었다. 두 분도 어쩔 수 없었는데 그런 두 분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내가 나쁜 아이인 것 같아 괴로웠고 나를 나쁜 아이로 만든 부모님이 다시 원망스러워지는 악순환이었다. "부지중에 저지르셨지만 나는 찔렸는걸요"가 내 주제가였다. 그런데 부지중에 저지른 살인자라도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게 된다고 하시지 않나. 내가 보복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받은 상처만큼 똑같은 깊이로 찌르지 않아도 그분들은 하나님 앞에 판결받게 된다.


물론 부모님이 하나님 앞에서 처벌받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분들은 이미 나에게 심판을 받고 있고 충분히 벌을 받고 계시다. 자기 뜻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시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괴로운 삶을 벌로 받고 계시다. 자주 연락하지 않고 마음을 활짝 열지 않는 딸, 부모님이 생각하기에 정신적으로 특별히 문제 있는 사람만 먹는다는(그게 나예요) 정신과 약을 먹는 딸(부모님은 내가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것 자체로 이미 너무 괴로워하신다), 이미 나는 충분히 부모님을 괴롭게 해드리고 있다. 눈빛으로 태도로 온몸으로 부모님을 무시하며, 부지중이 아니라 '악의를 가지고' 보복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복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시네. 나야말로 지금 당장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데 이렇게 살려두시고 기회를 주시고 있는 거다. 무슨 기회? 돌이키라고, 보복의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보복하지 않는 것만이 내가 죽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판결을 받게 될, 받고 있는, 부모님을 애통해하라고.. 


나는 부모님이 이혼으로 나를 힘들게 해서 미워하는 게 아니었다. 두 분이 그냥 돈이 없고 무능력해서 무시가 되는 거다. 깊이 들어가 보니 이것이 나의 본심이었다. 너무도 부끄럽고 인간이하 같지만, 그래서 내가 죄인이라는 거다. 여전히 나는 죄인이 아니라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는가? 그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나는 구원받을 수 없다. 부모님이 내게 상처를 줬다고 보복하려고 한 나의 뿌리 깊은 악함을 회개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 굳어온 이 생각의 회로를 내 의지로는 끊을 수가 없다. 죄인의 입장이 되지 않는 나를 애통해하며 이 악함을 진정으로 회개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오늘이 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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